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193
한자 洛陽里
영어공식명칭 Nagy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낙양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낙양리에서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89㎢
가구수 127가구
인구[남/여] 193명[남 94명|여 99명]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옛날 나향(羅鄕)의 소재지였다고 한다. 나향이 낙양으로 바뀌어 낙양리(洛陽里)로 명칭이 붙여졌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태인군 흥천면(興天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내이리(內二里), 외이리(外二里), 야신리(野新里), 낙양리, 용정리(龍井里), 하이리(下二里)와 군내면(郡內面) 신기리(新基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심 마을 이름을 따서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낙양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낙양리 내이마을과 외이마을 뒷산은 토끼봉이라 하는데, 토끼봉에는 옥토망월혈(玉兎望月穴)이 있다고 한다. 낙양리 북쪽으로 멀리 백산[잣뫼, 잠매]과 박산이 있다. 서쪽에는 태인천을 건너 정우면정토산이 길게 자리한다. 낙양리 서쪽으로 태인천이 이어진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낙양리의 면적은 1.89㎢이며, 인구는 127가구, 193명[남자 94명, 여자 99명]이다. 낙양리태인면의 중앙부 서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오봉리, 서쪽으로 정우면 대사리, 남쪽으로 태창리, 북쪽으로 궁사리와 접하고 있다.

낙양리는 원낙양(元洛陽)마을, 내이(內二)마을, 외이(外二)마을 등 3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국도 제30호가 원낙양마을 사이로 지나갔으나 현재 동쪽으로 이설되어 옛 길을 석지로라 하며, 석지로가 주요 교통로이다. 내이마을에는 현대식 주택으로 구성된 태인문화마을이 있다. 태인문화마을 조성 사업은 1997년 12월 30일 시작되어 1999년 5월 27일 완공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한중일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한 언론인이자 사상가이며, 『진재전후(震災前後)』를 쓴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한 마명(馬鳴) 정우홍(鄭宇洪)[1897~1949]이 낙양마을에 속하는 홍촌마을 출신이다. 전도성(全道成) 명창이 낙양리에 살 때 정노식(鄭魯湜)이 약 한 달 동안 같이 거주하며 집중적인 면담을 통하여 전도성의 구술을 받아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외이마을 서쪽 모정 옆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정읍시 보호수이며, 음력 2월 초하루에 당산제를 지내는 외이마을의 당산나무이다. 외이마을 서쪽 끝에 열녀 진주하공영풍 배 경주 김씨정려(烈女 晉州河公永豊 配 慶州 金氏旌閭)와 효자 진주하공숙홍 유허비(孝子 晉州河公叔泓 遺墟碑)가 있다.

낙양리에는 공공 기관으로 한국농어촌공사 정읍지사 낙양관리소가 있다. 동진강 본류에서 김제 용수 간선과 정읍 용수 간선이 갈라지는 낙양취입수문이 낙양리에 있다. 낙양취입수문은 1927년에 준공된 시설이며, 동진강 유역 농경지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용수로에 물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매년 4월 ‘백파제 통수식’이 열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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