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4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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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斗升山城 |
이칭/별칭 | 승고산성,영주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산23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원종 |
조성|건립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두승산성 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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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4월 1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두승산성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두승산성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 |
현 소재지 | 두승산성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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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5㎞[둘레] |
면적 | 1,216,392㎡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에 있는 두승산을 감싼 삼국 시대 포곡식 산성.
[개설]
두승산성(斗升山城)은 높이 443m의 두승산 정상부에서 북서쪽과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비롯하여 북서쪽의 골짜기를 감싸 만든 포곡식의 석성이다.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승고산성, 영주산성이라고도 부른다. 두승산성은 1981년 4월 1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두승산성의 축성에 관한 문헌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고부군 산천 조, 『문헌비고(文獻備考)』,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고부읍지(古阜邑誌)』 등에 나온다. 먼저 성종 대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두승산 재군동오리 일운도순산 유고석성 주일만팔백십이척 과우대학 영주시구성야(斗升山 在郡東五里 一云都順山 有古石城 周一萬八百十二尺 跨于大壑 瀛州時舊城也)”라고 하였다. 영주(瀛州)는 936년(태조 19) 고부군에서 이름이 바뀐 것으로 두성산성은 고려 시대에 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08년 『문헌비고』에는 “승고산성 재동오리 삼한시석축 주일만팔십일척금폐(升高山城 在東五里 三韓時石築 周一萬八十一尺今廢)”라고 적혀 있어 이미 폐성(廢城)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 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고부군 조에는 “진산도순 재군동오리(鎭山都順 在郡東五里)”라 하였고, 정조 대에 편찬된 『고부읍지』에는 “두승산 재군남오리 고칭도순 우칭영주산 산유구봉 기최고봉유석두석승 고명이두승산(斗升山 在郡南五里 古稱都順 又稱瀛州山 山有九峰 其最高峰有石斗石升 故名以斗升山)”이라 하여 이때 두승산성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승산성의 초축(初築)은 산성의 북서쪽에 있는 유선사(遊仙寺) 주변에서 백제계 토기편, 마제석부 등이 발견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 시대에는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의 산성이었다가 후대에 산성을 확장시켰던 것으로 이해된다.
[위치]
두승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산23 일원의 두승산에서 남서쪽의 여러 봉우리와 북서쪽의 산줄기, 그리고 서쪽의 계곡부를 감싼 대규모 산성이다. 유선사 진입로에서 2.3㎞ 정도 산에 오르면 유선사에 이른다. 두승산성은 유선사로부터 남쪽 산줄기를 따라 이어지며, 유선사의 서쪽 계곡부에 성벽과 무너진 석재들이 확인된다.
[형태]
두승산성의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동서 방향으로 긴 네모 형태에 가까우나 굴곡이 많은 편이다. 성벽은 주로 서쪽에 일부 남아 있는데, 능선의 정상부에서 조금 아래쪽 경사면에 장방형으로 잘 다듬은 성돌을 수평 줄쌓기식으로 쌓은 흔적이 있으며, 외벽만 쌓은 내탁식(內托式)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둘레는 약 5㎞이며 『동국여지승람』의 “주일만팔백십이척(周一萬八百十二尺)”이라고 기록된 것을 포백척(布帛尺)[46.73㎝]으로 환산하면 약 50,524m이다. 면적은 121만 6392㎡이다. 성문 터는 남문과 서문이 있다. 남문 터는 유선사로부터 남서쪽으로 2.9㎞ 정도 따라가면 남쪽 계곡의 초입부 부근이며, 서문 터는 서쪽 계곡 말단부의 곡부 가운데 지점이다. 산성의 서쪽에는 계곡부에서 흘러나오는 계곡 물이 북서쪽에 있는 입석2제로 흐른다. 성안에는 물을 배수하기 위한 수구 터[水口址]가 있으며, 남문 터 계곡부에도 수구 터가 있다.
[현황]
두승산성의 동남 모서리에 해당하는 끝에는 팔각정이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두승산 정상에 이르면 망선대(望仙坮) 등 여러 각자(刻字)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두승산성의 성벽은 무너졌거나 숲이 우거져 거의 확인이 어렵지만 서쪽 성벽과 남쪽 성벽에서 돌로 쌓은 성벽과 무너진 성돌들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두승산성은 고려 시대 고부가 영주로 개명되었을 때 이미 옛 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 그리고 유선사 주변에서 백제 시대 유물이 확인되는 점 등을 통하여 삼국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고려 시대에는 산성을 확장하여 운영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