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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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峴祠址 |
영어공식명칭 | Suhhyeonsaji|Suhhyeonsaji Shrine Archeological sit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서재길 13[태서리 90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란 |
건립 시기/일시 | 18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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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68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4월 1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서현사지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서현사지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 |
소재지 | 서현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서재길 13[태서리 909]![]() |
성격 | 사당 터 |
지정 면적 | 548㎡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에 박문효의 사당 서현사가 있던 터.
[개설]
서현사지(西峴祠址)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하여 목숨 바친 박문효(朴文孝)[1568~1593]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사당인 서현사의 옛터이다. 서현사지는 1981년 4월 1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변천]
박문효는 중종반정의 공신인 박원종의 후손으로 종묘서직장이라는 관직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신하자 왕을 따라가 모셨다. 다음 해 한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개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26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박문효의 아내 진천 송씨는 어린 자식과 함께 태인으로 내려와 있다가, 남편의 죽음을 전하여 듣고 남편을 뒤따라 목숨을 끊었다. 후에 호남 유림들의 상소로 1817년(순조 17) 이조참의로 증직되었으며, 1819년(순조 19) 서현사를 세워 충신 박문효와 진천 송씨의 뜻을 기렸다. 이후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현사는 헐리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서현사가 있던 자리에는 진천 송씨를 위하여 세운 정려와 유허비가 남아 있다.
[위치]
서현사지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서재길 13[태서리 909]에 있다.
[현황]
서현사지 묘정에는 2채의 정려각이 있으며, 1914년 세운 ‘증이조참의행종묘서직장박공서현유허비(贈吏曺參議行宗廟署直長朴公西峴遺墟碑)’가 서 있다. 1984년 국비 보조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의 사당을 건립하였다.
[의의와 평가]
서현사지는 국난을 당하여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을 바쳐 싸운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는 곳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