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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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潛碑 |
영어공식명칭 | Tombstone of Shin jam |
이칭/별칭 | 신잠선정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산길 1[태창리 9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91년 - 신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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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549년![]()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54년 - 신잠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4월 1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신잠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신잠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신잠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
현 소재지 | 신잠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산길 1[태창리 92]![]()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신잠 |
재질 | 화강암|대리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89㎝[높이]|81㎝[폭]|19㎝[두께] |
소유자 | 정읍시 |
관리자 | 정읍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신잠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조선 전기의 비석.
[개설]
신잠비(申潛碑)는 태인현감을 역임한 신잠(申潛)[1491~1554]의 공적을 기리기 하여 1549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피향정 옆에 건립한 비석이다. 신잠은 1543년(중종 38) 태인현감으로 부임하여 6년 동안 있으면서 4부학당을 세우고, 유학을 권장하여 선정(善政)을 베풀고 많은 치적을 남겼다. 이후 간성군수로 떠났다. 태인 사람들은 신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성황사에 신잠과 부인, 동자, 시녀, 호랑이 상을 모셔 놓고 매년 정월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올려 고을의 안녕과 국세를 상납할 때 불상사가 없기를 기원하였다. 신잠은 무성서원에도 배향되어 있다.
신잠비는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신잠비는 태인현감을 역임하면서 많은 치적을 쌓은 신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신잠선정비라고도 한다.
[위치]
신잠비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피향정 옆에 있다.
[형태]
신잠비는 화강암 대좌 위에 비신을 올렸다. 비석은 여산에서 출토된 백색의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비와 바람에 마모되고 석질(石質)이 변화되어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다. 비석은 높이 189㎝, 폭 81㎝, 두께 19㎝이다. 비문은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이 지었다.
[금석문]
신잠비 비문의 내용은 신잠이 태인현감으로 있으면서 이룬 업적과 신잠의 글솜씨를 칭송하고 있다.
[현황]
신잠비는 과거에는 민가 사이에 노출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보호각을 세웠다. 보호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주변이 정비되었으며,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잠은 일재 이항과 더불어 태인 유학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인물로, 신잠비는 지역의 학문과 문화 발전에 기여한 신잠의 업적을 되새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