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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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용흥리 산17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광환 |
소재지 | 고부군 사직단 터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용흥리 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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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제단 터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용흥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직단 터.
[개설]
사직단(社稷壇)은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사(社)와 오곡(五穀)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사직단은 1406년(태종 6) 전국의 모든 부·주·군·현에 사직단을 세워 제사를 행하라는 명에 따라 각 고을마다 건립되었다. 고을에는 통상 3단 1묘의 제사 시설이 세워졌는데 3단은 사직단, 억울하게 죽은 백성의 넋을 위로하는 여단(厲壇), 고을을 지켜 주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성황단(城隍壇)을 말하며, 공자를 상징하는 문묘(文廟)에 제사를 지내는 향교(鄕校)를 1묘라 한다.
고부군 사직단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부군의 사묘(社廟)로 사직단 재군서(在郡西), 성황사(城隍祠) 재군성북우(在郡城北隅), 여단 재군북(在郡北)이라 하였고 『고부군읍지』에는 단묘(壇廟)로 사직단 재군서이리(在郡西二里), 여단 재군북이리(在郡北二里), 성황사 재군북일리(在郡北一里)라 하였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고부군의 사묘로 사직단 재군서(在郡西), 문묘 재향교(在鄕校), 성황사 재군성북우(在郡城北隅), 여단 재군북(在郡北)이라 하였다. 이상의 문헌 기록에 의하면 사직단은 공통적으로 고부군의 서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1872년 지방지도』를 보면 산 서쪽에 사직단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제단이 언제 없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위치]
고부군 사직단 터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용흥리 산17번지에 있다. 현재 고사부리성이 있는 성황산(城隍山)[영원면] 해정사지(海鼎寺址) 경내를 지나 남쪽으로 오르면 높이 2m 정도의 정방형 흙으로 쌓은 단이 나온다.
[현황]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은 정읍시의 서북쪽에 있으며 부안군과 경계를 이룬다. 주변에는 두승산을 비롯하여 100~400m에 이르는 구릉성 산지와 너른 평야가 발달하여 있다. 고부 관아가 1765년 성황산[영원면] 아래로 이전함에 따라 성황산이 고부군의 주산 역할을 하게 된다. 성황산은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동쪽 봉우리에 성황당이 있었다. 성황산 북쪽에 여단이 있었고 서쪽에 사직단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고부군 사직단 터는 정읍의 3단 제사 유적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어 보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