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551
한자 金胤祥 孝子 旌閭
이칭/별칭 김윤상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수금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15년연표보기 - 김윤상 효자 정려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8년 - 김윤상 효자 정려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0년 - 김윤상 효자 정려 개수
현 소재지 김윤상 효자 정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수금리 금북마을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석정려
소유자 김해 김씨 문중
관리자 김해 김씨 문중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수금리에 있는 김윤상의 효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 정려.

[개설]

김윤상(金胤祥)[1741~1807]은 본관이 김해(金海), 자는 대현(大顯)이다.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여득(金麗得)이다.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수금리에서 출생하였다. 김윤상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랐다. 『순조실록(純祖實錄)』에 따르면 1816년(순조 16) 6월 8일 고부(古阜) 출신 김윤상과 아들 진사 김기섭(金基聶)을 효행으로 모두 복호하여 줄 것을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효행으로 명정을 내리고, 1885년(고종 22) 어모장군 훈련원정에 증직되었다. 김윤상의 묘는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소룡동 안산에 있다. 김윤상 효자 정려(金胤祥 孝子 旌閭)는 ‘김윤상 정려’라고도 한다.

[위치]

김윤상 효자 정려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수금리 금북마을 육모정 맞은편 밭 가운데에 있다. 수산길 8에서 왼쪽으로 돌아 북쪽으로 보면 허물어져 가는 육모정이 있으며, 육모정에서 밭을 지나 약 30m 지점 수풀 속에 있다.

[변천]

김윤상 효자 정려는 1816년 건립되었으며, 1938년 중수되었고, 1960년 현재 모습으로 개수되었다.

[형태]

화강암을 쌓아 담장을 두르고, 중앙에 2개의 화강암으로 만든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 모양의 뚜껑을 얹은 출입문을 만들었다. 출입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기단부 위에 4매의 화강석 돌기둥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석정려가 있다. 석정려의 중앙에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귀부(龜趺)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수(螭首)를 올렸다. 비석은 높이 115㎝, 폭 42㎝, 두께 16㎝이다. 비석의 정면에는 ‘효자 증어모장군 훈련원정 김윤상지려(孝子贈禦侮將軍訓練院正金澈祥之閭)’라고 쓰여 있다. 좌측면과 후면에는 「김효자정려기(金孝子旌閭記)」가 기록되어 있다. 정려기는 1828년 통정대부 승정원우부승지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풍성후인(豊城后人) 조용화(趙容和)[1793~1845]가 썼다. 이어서 「김효자정려중수기발(金孝子旌閭重修記跋)」이 있다. 발문은 1938년에 통정대부 행시강원보덕 풍성후인 조숙하(趙肅夏)가 글을 짓고, 증손 김수봉(金洙鳳)이 글씨를 썼다. 비석의 우측면에는 「정려중수기(旌閭重修記)」가 있다. 「정려중수기」에는 “고조할아버지의 효행 정려가 130여 년이 지나 동량(棟樑)이 퇴락하고, 단청이 색이 없어져 여러 후손들이 힘을 모아 돌로 정려를 세웠다[高祖考孝行之閭于今百三十年餘年棟樑頹落丹靑無色故諸孫衆力總合更以石建閭]”라고 하여 1960년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김윤상 효자 정려는 2023년 4월 조사 시에 수풀 속에 있었으며, 정려 주변에도 잡목이 우거져 있어 관리가 소홀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김윤상 효자 정려김윤상의 효행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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