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553
한자 金春植 妻 宜寧 南氏 旌閭
이칭/별칭 열녀 학생 김춘식 처 유인 의령 남씨 지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689-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15년 -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59년 -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사망
건립 시기/일시 1861년연표보기 -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정려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883년 -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정려 석정려로 개수
현 소재지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정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689-2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석정려
관련 인물 김춘식|의령 남씨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102㎝[높이]|38㎝[폭]|15㎝[두께]
소유자 김해 김씨 문중
관리자 김해 김씨 문중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에 있는 김춘식의 처 의령 남씨를 기리는 조선 후기 석정려.

[개설]

의령 남씨(宜寧 南氏)[1815~1859]는 봉곡서원(鳳谷書院)에 배향된 남명한(南溟翰)의 8세손이다. 남편은 김해 김씨 김춘식(金春植)이다.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춘식의 병환이 위중하자, 두 다리의 허벅지살을 베어 달여 먹이고, 손가락 세 개를 잘라 피를 흘려 넣었지만 회생하지 못하고 그만 사망하였다. 의령 남씨는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른 뒤 그날 밤 자결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61년 명정이 내려졌다.

[위치]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정려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689-2번지에 있다. 규촌제에서 동남쪽으로 17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변천]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정려는 1861년 목재로 건립되었다가 1883년 돌로 개수되었다.

[형태]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정려는 시멘트 벽돌을 쌓고 위에 기와를 얹은 담장을 둘렀다. 정면에 두 개의 화강암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얹은 출입문을 만들었다. 출입문의 위에는 ‘열녀문(烈女門)’이라고 쓰인 석현판을 끼웠다. 석현판의 뒤에는 중건기가 있다. 중건기에는 의령 남씨 정려의 중건 과정을 기록하였다. 글은 성산인(星山人) 배홍제(裵弘齊)가 1897년에 썼다. 석정려는 화강암으로 기단을 만들고 위에 네 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올렸다. 석비는 화강암의 기단 위에 비신을 올리고,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올렸다. 비석의 높이는 102㎝, 폭 38㎝, 두께 15㎝이다.

[금석문]

비석의 정면에는 ‘열녀 학생 김춘식 처 유인 의령 남씨지려 철종십일년신유십월 명정(烈女 學生 金春植 妻 孺人 宜寧 南氏之閭 哲宗十一年辛酉十月 命旌)’이라 쓰여 있다. 비석의 뒷면과 우측면에는 ‘고부 고사인 김춘식 처 남씨 정려 서(古阜 故士人 金春植 妻 南氏 旌閭 序)’가 있다. 비문은 1861년 11월 형조판서 조휘림(趙徽林)[개명 조병휘(趙秉徽), 1808~1874]이 썼다. 비문에 이어서 1883년 돌로 다시 세웠다고 쓰여 있다.

[현황]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정려는 2023년 현지 조사 결과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춘식 처 의령 남씨 정려의령 남씨의 열행을 살필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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