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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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平 李氏 旌閭 |
이칭/별칭 | 강항 처 함평 이씨 정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92-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건립 시기/일시 | 163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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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함평 이씨 정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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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정려 |
양식 | 석정려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에 있는 강항의 아내 함평 이씨를 기리는 조선 후기 석정려.
[건립 경위]
함평 이씨 정려(咸平 李氏 旌閭)는 1633년에 강항(姜沆)[1567~1618]의 아내 함평 이씨(咸平 李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원동곡마을에 건립한 석정려이다. 강항은 본관이 진주(晉州),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이다. 좌찬성 강희맹(姜希孟)의 5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강형수(姜亨壽), 할아버지는 강오복(姜五福), 아버지는 강극검(姜克儉)이다. 외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김효손(金孝孫)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전라남도 영광 출신으로 1593년 전주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교서관정자, 가주서, 교서관박사가 되었으며, 1596년 공조좌랑과 이어 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강항은 1597년 고향에 내려와 있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분호조참판 이광정(李光庭)의 종사관으로 군량미 수송의 임무를 맡았다. 아군의 전세가 불리해져 남원이 함락당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순찰사 종사관 김상준(金尙寯)과 함께 격문을 돌려 의병 수백 명을 모았다. 강항은 영광이 함락되자 가족들을 거느리고 해로로 탈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고, 오쓰성[大津城]에 유폐되었다. 1600년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귀국할 수 있었다. 강항은 1602년 대구교수(大邱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곧 사직하였으며, 1608년 순천교수(順天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 그리고 향리에서 독서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 윤순거(尹舜擧) 등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강항이 일본군에게 납치되어 압송되었을 때 함평 이씨는 수절하면서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 1633년(인조 11)에 함평 이씨를 가상히 여겨 명정을 내렸다. 함평 이씨 정려는 ‘강항 처 함평 이씨 정려’라고도 부른다.
[위치]
함평 이씨 정려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92-3번지에 있다. 산외면사무소에서 용두교를 지나면 원동곡마을로 들어가는 상선로가 있다. 성산로를 지나 서쪽으로 약 130m 이동하면 북쪽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동곡1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서 약 110m를 가면 오른쪽 길가에 있다.
[형태]
함평 이씨 정려는 붉은 벽돌로 담장을 두르고 중앙에 문을 내었다. 문에는 ‘정열문(旌烈門)’이라 쓰여 있다. 정열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석정려가 있다. 석정려는 2단의 기단 위에 두 개의 화강암으로 된 돌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올렸다. 뚜껑돌 아래 돌기둥에 돌로 된 현판을 끼워 넣었다. 현판의 정면에는 ‘정열 함평 이씨 정려비(旌烈 咸平 李氏 旌閭碑)’라고 쓰여 있으며, 뒷면에는 ‘정려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 성균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시강원좌빈객 행통훈대부 형조좌랑 강항지배 정열 증정부인 함평 이씨지려 인조십일년 계유 명정(旌閭 贈資憲大夫 吏曹判書 兼 知經筵 義禁府使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 成均館使 五衛都摠府都摠管 侍講院左賓客 行通訓大夫 刑曹佐郎 姜沆之配 貞烈 贈貞夫人 咸平 李氏之閭 仁祖十一年 癸酉 命旌)’이라 쓰여 있다. 현판의 크기는 가로 72㎝, 세로 42㎝이다.
함평 이씨 정려 왼쪽에는 1827년 세운 강창영의 효자 정려가 있다. 강창영 효자 정려는 바닥 위에 두 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뚜껑돌을 얹고, 뚜껑돌 아래에 석현판을 기둥에 끼운 형태이다. 정면에는 ‘효자 학생 진주 강창수지려 임신삼월 일(孝子 學生 晉州 姜昌永之閭 壬申三月 日)’이라 쓰여 있다. 뒷면에는 아들부터 5대손까지의 이름이 있다. 현판의 크기는 가로 53㎝, 세로 43㎝이다. 함평 이씨 정려 옆에는 「열녀함평이씨정려이건기(烈女咸平李氏旌閭移建記)」가 있다. 이건기는 기묘년 여름 4월에 송재희(宋在熙)가 짓고, 진주인 최동근(崔東根)이 글씨를 썼다.
[현황]
함평 이씨 정려는 2023년 현장 조사 결과 담장과 출입문의 철재에 페인트칠을 다시 하였으며, 바닥을 시멘트로 마감하여 놓는 등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