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31
한자 李敬國
영어공식명칭 Lee Kyungguk
이칭/별칭 예경(禮卿),격암(格庵)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49년연표보기 - 이경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3년 - 이경국 무과 급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597년 - 정유재란 발발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이경국 의병 창의
몰년 시기/일시 1597년 3월 22일연표보기 - 이경국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56년 - 이경국 병조판서 추증
출생지 고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지도보기
활동지 입암산성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성격 무신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훈련원판관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의 무신.

[가계]

이경국(李敬國)[1549~1597]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예경(禮卿), 호는 격암(格庵)이다. 아버지는 공조참의 이덕붕(李德鵬)이고, 동생은 이안국(李安國)·이영국(李榮國)이다.

[활동 사항]

이경국은 1549년(명종 4)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에서 태어났다. 1573년(선조 6) 무과에 급제하였고, 훈련원판관을 역임한 뒤 관직에서 물러나 정읍으로 낙향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동생 이안국·이영국과 함께 집안에서 부리던 노복(奴僕) 수십 명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전라도관찰사 이정암(李廷馣)이 내어준 군사와 힘을 합쳐 장성의 입암산성(笠岩山城)을 지키다가 1597년 3월 22일 왜군의 공격으로 수성장 윤진(尹軫), 동생 이안국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경국과 이안국의 시신은 동생 이영국과 노복 용금(龍金)이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는데, 상을 치르고 3일 뒤 이경국의 부인 송씨(宋氏)가 자결하였다. 이경국과 형제들, 그리고 송씨 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이 끝난 후 전라도관찰사의 장계로 인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상훈과 추모]

이경국은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1856년(철종 7)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1길 70-7[모현리 302-1]에 있는 오산창의사(鰲山倡義祠)에 동생 이안국과 함께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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