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여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37
한자 閔汝雲
영어공식명칭 Min Yeoun
이칭/별칭 용종(龍從)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92년 10월 - 민여운 창의
활동 시기/일시 1593년 1월 - 민여운 의병장 김면·정인홍 등과 협력하여 왜군 격퇴
몰년 시기/일시 1593년 6월연표보기 - 민여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05년 - 민여운 선무원종공신에 녹훈
추모 시기/일시 1858년 - 민여운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증직
출생지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활동지 진주성 - 경상남도 진주시
성격 문신|의병장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용담현령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민여운(閔汝雲)[?~1593]의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용종(龍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균관전적 민구손(閔龜孫)이고, 할아버지는 좌찬성 민제인(閔齊仁)이다. 아버지는 예빈시봉사 민사관(閔思寬)이고, 어머니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이다. 부인은 진주 정씨(晉州 鄭氏)이고, 아들은 민격(閔格)·민집(閔楫)·민익(閔榏)이다.

[활동 사항]

민여운은 음서(蔭敍)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주부와 용담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鄕兵) 200여 명을 모집하여 의병장이 되었고, 스스로 비의장(飛義將)이라 부르며 부대를 이끌고 팔량치(八良峙)[경상남도 함양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사이에 있는 고개]를 넘어 함안 등지에서 왜군과 싸워 전과를 올렸다. 1593년에는 성주(星州)와 지례(知禮)의 경계에 주둔하며 의병장 김면(金沔)·정인홍(鄭仁弘) 등과 협력하여 여러 번 왜군을 격퇴하였다.

1593년 6월 민여운은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제2차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여 싸우다가 10여 군데나 창검에 맞아 왼손이 잘리고 오른손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였다. 이애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성을 사수하다가 왜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민여운은 사망한 뒤에 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1605년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1858년에는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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