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43
한자 裵命純
영어공식명칭 Bae Myeongsun
이칭/별칭 수초(遂初),충숙(忠肅)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배명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배명순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28년 - 배명순 군기시첨정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29년 - 배명순 보성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30년 - 배명순 함경북도병마우후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31년 - 배명순 덕원부사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배명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28년 - 배명순 충신 정려
추모 시기/일시 1871년 - 배명순 시호 충숙 추시
출생지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묘소|단소 배명순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계상리
성격 무관
성별 남성
본관 성산
대표 관직 군기시첨정|덕원부사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의 무신.

[가계]

배명순(裵命純)[1597~1637]의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자는 수초(遂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 배인범(裵仁範)이고, 할아버지는 공조참판 배흥립(裵興立)이다. 아버지는 선무랑 배시망(裵時望)이고, 어머니는 주부 신천기(申天記)의 딸 평산 신씨(平山 申氏)이다. 부인은 예빈시봉사 김엽(金曄)의 딸 의성 김씨(義城 金氏)이고, 아들은 배상경(裵尙瓊)·배상형(裵尙珩)이다.

[활동 사항]

배명순은 1597년(선조 30) 정읍에서 태어나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난 뒤 강화도로 피신한 인조(仁祖)가 후금군을 치기 위한 위사(衛士)를 모집하자 지원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이후 병사 300명을 이끌고 북상하여 함경남도 함흥의 안릉(安陵)에서 후금군을 격퇴하는 공을 세워 도총부도사로 승진하였다. 배명순은 1628년(인조 6) 공조좌랑에 제수되었고, 도총부경력과 사헌부감찰을 거쳐 군기시첨정을 역임하였다. 1629년 보성군수로 부임하였고, 1630년 함경북도병마우후를 거쳐 1631년에는 덕원부사로 부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배명순은 영장(營將)에 임명되어 함경남도병마절도사 휘하에서 근왕병을 일으켰다. 인조가 40여 일 동안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는 치욕적인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함경도병마절도사들이 청나라 군사를 두려워하여 진군하지 못하자 크게 분노한 배명순이 싸울 것을 건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637년 2월 청나라와 화의(和議)가 성립되고 왕이 도성으로 돌아오자, 모든 장수들은 군진을 해산하였다. 하지만 배명순은 함경남도병마절도사와 더불어 철수하는 청나라 군대를 함경남도 철령(鐵嶺)까지 추격하여 크게 무찔렀고, 계속해서 청나라 군사의 뒤를 쫓아 함경남도 안변의 남산역(南山驛)에까지 이르렀으나 복병의 기습을 받고 병사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묘소]

배명순의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계상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배명순은 1828년(순조 28) 충신으로 정려되었고, 1871년(고종 8) 충숙(忠肅)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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