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50
한자 李三晩
영어공식명칭 Lee Samman
이칭/별칭 윤원(允遠),구원(久遠),강암(强巖),강재(强齋),창암(蒼巖),이규환(李奎煥)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부전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70년연표보기 - 이삼만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47년연표보기 - 이삼만 사망
출생지 부무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부전동 부무마을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주시 자만동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묘소 이삼만 묘소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아랫잣골
성격 서예가
성별 남성
본관 전주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의 서예가.

[가계]

이삼만(李三晩)[1770~184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윤원(允遠)·구원(久遠), 호는 강암(强巖)·강재(强齋)·창암(蒼巖)이다. 본명은 이규환(李奎煥)이다. 전주 이씨 족보에 따르면 열일곱 살에 혼인하여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일찍 사망하였고, 후사를 잇기 위하여 셋째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였으나 자손이 끊겨 직계는 남지 않았다.

[활동 사항]

이삼만은 1770년(영조 46) 정읍현 동면 부무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부전동 부무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후 전주시 자만동[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교동]으로 이주하였다.

이삼만이 열아홉 살 때 아버지가 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독사에 물려 사망하는 바람에 이삼만은 이후 뱀을 보면 닥치는 대로 잡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정월 첫 사일(巳日)[뱀날]에 이삼만의 이름을 거꾸로 써 붙이면 뱀을 막아 준다는 뱀 방어가 인근 지역에 유행하였다고 한다.

이삼만은 평생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서예 연마와 서법 연구에 매진하였다. 스승 없이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를 보고 배웠으며, 집이 가난하여 종이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삼베나 바위 등에 솜뭉치·꾀꼬리 털·칡을 붓으로 삼아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벼루 세 개를 구멍 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하루도 글씨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삼만은 특히 행서와 초서를 잘 써 행운유수체라는 독특한 필법을 구사하였으며, 이삼만의 서풍은 동국진체(東國眞體)를 계승하여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삼만은 1847년(헌종 13)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삼만의 저술로는 1800년에 간행한 『화동서법(華東書法)』과 1840년에 간행한 『서결(書訣)』이 있다. 『화동서법』은 중국인 서예가 세 사람[미불·채양·동기창]과 한국인 서예가 세 사람[한석봉·윤순·이광사]의 글씨를 수집하여 편찬하였는데, 서예를 배우는 사람이 기본 교재로 쓸 수 있도록 하였다. 이삼만의 작품으로는 지리산 칠불암과 천은사 편액, 전주 남고산성 남고진사적비, 전주 제남정 편액, 정읍 부무마을 석담(石潭) 암각이 있다. 이삼만은 김정희(金正喜)·조광진(曺匡振)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꼽힌다.

[묘소]

이삼만의 묘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아랫잣골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삼만은 2021년 정읍시에서 ‘9월의 정읍 역사인물’로 선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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