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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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敏灝 |
영어공식명칭 | Bak Minho |
이칭/별칭 | 사언(士彦),요지헌(樂智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장명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용련 |
출생 시기/일시 | 18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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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78년 - 박민호 동지부중추부사 제수 |
추모 시기/일시 | 1879년 - 박민호 혜중비 건립 |
몰년 시기/일시 | 1897년![]() |
출생지 | 장명동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장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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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박민호 묘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송산1길 44-28[송산동 103-1]![]() |
성격 | 자선가 |
성별 | 남성 |
본관 | 태안 |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자선가.
[가계]
박민호(朴敏灝)[1821~1897]의 본관은 태안(泰安)이며, 자는 사언(士彦), 호는 요지헌(樂智軒)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보운(朴普運)이고, 할아버지는 박상신(朴尚信)이다. 아버지는 박경로(朴景駑)이고, 어머니는 전이채(田以采)의 딸 담양 전씨(潭陽 田氏)이다. 부인은 정래효(鄭來孝)의 딸 초계 정씨(草溪 鄭氏)이고, 아들은 박기현(朴紀炫)이다.
[활동 사항]
박민호는 1821년(순조 21)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장명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아버지의 병을 낫기를 바라며 단을 쌓고 제를 올려 효행으로 고암서원(考巖書院)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1876년(고종 13) 호남 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일반 백성들의 호포세 1,500냥을 대신 납부하여 주었으며, 연속되는 흉년에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발생하자 곡식을 나누어 주고 매일 대문을 열어 아침저녁으로 밥이나 죽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박민호는 굶주린 백성을 보살핀 행적이 조정에 알려져 1878년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고, 백성들은 곳곳에 나무로 된 송덕비를 세워 박민호의 공덕을 기렸다. 박민호는 1897년에 사망하였다.
[묘소]
박민호의 묘소는 정읍시 송산1길 44-28[송산동 103-1]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79년 정읍현에서 박민호의 덕행을 기려 혜중비(惠衆碑)를 건립하였다. 혜중비는 연지원(蓮池院)[현 정읍시 연지동] 큰길가에 처음 세웠으나 호남선 철도 개설 등으로 위치를 옮겨 다니다가 현재는 정읍시 송산1길 40-15[송산동 100-5]의 태안 박씨 재실 수각원(水閣園)에 있다. 본래의 비석은 훼손되었고, 지금의 비석은 1926년 후손 박기철이 다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