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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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淑嬪 崔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설이 있는 숙종의 후궁.
[가계]
숙빈 최씨(淑嬪 崔氏)[1670~1718]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말정(崔末貞)이고, 할아버지는 최태일(崔泰逸)이다. 아버지는 최효원(崔孝元)이고, 어머니는 홍계남(洪繼南)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이다. 아들은 제19대 임금 영조(英祖)[이금(李昑)]이다.
[활동 사항]
숙빈 최씨는 1670년(현종 11)에 태어났으며, 출생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영조실록(英祖實錄)』에는 여경방 서학동[현 서울특별시 세종로]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는 조선 시대의 창평현[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갑향리]에서 출생하였다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나주목사로 부임하러 가던 벼슬아치의 부인 민씨가 길가 또는 용흥사에서 이름이 ‘복순’인 최씨를 데리고 가 훗날 인현왕후(仁顯王后)[1667~1701]와 함께 궁궐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에서 출생하였다는 설이다. 이 설은 장봉선(張奉善)이 1936년 편찬한 『정읍군지(井邑郡誌)』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다. 『정읍군지』에 따르면 1676년경에 민유중(閔維重)[1630~1687]이 훗날 인현왕후가 되는 여덟 살 딸과 함께 영광(靈光)으로 부임하기 위하여 내려가던 중 대각교에서 걸식하던 소녀를 거두었는데, 바로 그 소녀가 숙빈 최씨라는 것이다.
인현왕후와 숙빈 최씨의 나이를 고려하면 연대는 비슷하지만 민유중이 영광군수를 역임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민유중은 1668년 충청감사에 임명되고 1673년 호조판서를 역임하였는데, 1670년대에 판서를 역임하던 민유중이 영광군수로 부임하였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숙빈 최씨는 1693년(숙종 19) 아들 이영수(李永壽)를 잉태하여 숙원(淑媛)이 되었으나 이영수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사망하였고, 1694년 연잉군(延礽君) 이금을 낳은 뒤 숙의(淑儀)가 되었다. 1695년에는 귀인(貴人)에 오르고, 1699년 정1품 숙빈에 책봉되었다.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에 따르면 영조의 아래로도 왕자가 있었으나 어렸을 때 죽었다고 한다. 1718년 3월 9일 사망하였다.
[묘소]
숙빈 최씨의 묘소인 소령원(昭寧園)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소령원길 41-65[영장리 267]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읍시에서는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518-8의 대각교가 있는 곳에 ‘만남의 광장’을 조성하여 숙빈 최씨를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