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욱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93
한자 權承昱
영어공식명칭 Gwon Seungu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7년 7월 10일연표보기 - 권승욱 츨생
활동 시기/일시 1938년 6월 - 권승욱 조선어학회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2년 10월 1일 - 권승욱 일제 경찰에 검거
활동 시기/일시 1943년 9월 18일 - 권승욱 기소유예로 석방
활동 시기/일시 1945년 9월 - 권승욱 『조선말 큰사전』 편찬위원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권승욱 사망
출생지 시산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지도보기
수학|강학지 고창고등보통학교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면 읍내리
성격 학자
성별 남성
대표 관직|경력 한글학회 이사|배재고등학교 교사

[정의]

일제 강점기 정읍 출신의 국문학자.

[가계]

권승욱(權承昱)[1917~1973]은 권오운, 권상주, 권시내, 권한솔, 권범 등의 아들이 있다.

[활동 사항]

권승욱은 1917년 7월 10일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4월 7일 고창고등보통학교[현 고창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유도 선수, 야구부 포수, 축구부 골키퍼 등 만능 운동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1935년 3월 4일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고창고등보통학교 스승인 정인승(鄭寅承)으로부터 조선어사전 편찬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1938년 6월 조선어학회에 참여하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원이 되어 정인승·이극로(李克魯)·이중화(李重華)·한징(韓澄)·권덕규(權悳奎)·정태진(丁泰鎭) 등과 함께 16만 개에 달하는 우리말 어휘를 모아 뜻풀이를 완성하였으며, 1942년 봄에 사전의 원고 일부를 조판하였다.

당시 일제는 단계적으로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려는 계획 아래 조선어사전 편찬을 막고자 하였고, 조선어사전 편찬 사업에 참가한 교사 정태진을 취조하던 중에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 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일제는 조선어학회 핵심 관련자들을 내란죄로 검거하여 기소함으로써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 발생하였다. 권승욱도 1942년 10월 1일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고, 모진 고문을 당한 뒤 함경도에서 1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1943년 9월 18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권승욱은 출소한 뒤 전라남도 광주에서 휴양하다가 벌교에 있는 학교 교사로 잠시 일하기도 하였다. 1945년 9월 초에는 상경하여 조선어학회가 추진 중이던 『조선말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다시 참여하였다. 이후 한글학회 이사, 수도여자사범대학 강사, 배재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등을 역임하였다. 권승욱은 1973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권승욱의 헌신을 기리기 위하여 2021년 10월 정읍시에서는 권승욱을 이달의 역사 인물로 선정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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