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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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龍臣 |
이칭/별칭 | 채동근(蔡東根),채용덕(蔡龍德),대유(大有),석지(石芝),석강(石江)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용련 |
출생 시기/일시 | 1850년 2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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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86년 - 채용신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900년 - 채용신 태조 어진 모사 |
활동 시기/일시 | 1901년 - 채용신 칠곡군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901년 - 채용신 고종 어진 모사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채용신 정산군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채용신 관직 사임 후 낙향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채용신 정읍에 머물며 초상화 작업 |
활동 시기/일시 | 1914년 - 채용신 『석강실기』, 『봉명사기』 저술 |
몰년 시기/일시 | 1941년 6월 4일![]() |
출생지 | 삼청동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
활동지 | 채석강도화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태인읍 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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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평강 채씨 선산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동촌리 |
성격 | 초상화가 |
성별 | 남 |
본관 | 평강 |
대표 경력 | 정산군수 |
[정의]
개항기 정읍 지역에서 활동한 초상화가.
[가계]
채용신(蔡龍臣)[1850~1941]은 1850년(철종 원년) 2월 4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자는 대유(大有), 호는 석지(石芝), 석강(石江)이다. 원래 이름은 채동근(蔡東根)이며, 어렸을 때 이름은 채용덕(蔡龍德)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활동 사항]
채용신의 집안은 본래 전라도 완산[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에 거주하였는데, 채용신의 할아버지 때 삼청동으로 이사갔다. 채용신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고, 성인이 되자 그림으로 유명하여졌다. 일설에 의하면 22세 때 흥선대원군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채용신은 1886년(고종 23) 무과시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이름을 ‘채용신’으로 바꾸었다. 정6품인 사과, 종5품인 의금부도사를 거쳐 종3품인 부산진수군첨절제사가 된다. 당시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 전하며,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백성들이 채용신을 기리는 비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이후 돌산진수군첨절제사가 되는데 무관으로서 마지막 직책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태조 어진을 모사할 화사를 찾고 있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의 초상을 그려 유명해진 채용신이 추천되어 1900년 시험을 치르고 발탁된다. 태조 어진을 모사한 공을 인정받아 1901년 칠곡군수를 제수받는다. 이후 고종이 1901년 자신의 어진을 그릴 것을 명하고, 채용신의 호를 물으며 사는 곳 근처에 채석강이 있으니 ‘석강’이라는 호를 내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1905년 총리대신 윤용선의 천거로 정산군수에 임명되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과 만나게 된다.
채용신은 1906년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뒤 전라북도 일대를 무대로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10년대 초 채용신이 그린 초상화 대부분은 우국지사들이었다. 그 외에도 여인상과 부부상을 그렸으며, 사진을 활용하여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채용신은 정읍에 정착한 후 신태인읍 육리에 ‘채석강도화소(蔡石江圖畵所)’라는 공방을 차리고 돈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 준다는 상업 광고를 냈다. 1941년 6월 4일 사망하였으며, 2년 뒤 1943년 6월 4일에서 10일까지 유작 전시회가 열렸다.
[저술 및 작품]
채용신은 태조·숙종·영조·정조·순조·익종·헌종·고종의 어진을 그렸다. 공자·주자 등 성현과 「최치원상」을 모사하였다. 최익현·임병찬·박만환·김직술·김영상·전우·황현 등 많은 초상을 남겼다. 「운낭자상(雲娘子像)」, 「노부인상」, 「실명씨상」 등 여인의 초상과, 「황장길 부부상」 등 부부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44세 때 수군첨절제사인 본인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남겼다.
광해군 때 어지러운 시국을 개탄하며 벼슬을 그만둔 10인을 그린 「송정십현도(松亭十賢圖)」와 무성서원과 주변 풍경이 잘 드러난 「칠광도(七狂圖)」를 이모(移摸)하였다. 김영상이 일제의 은사금을 거절하고 체포되어 이송되던 중 만경강에 투신한 일화를 소재로 「김영상투수도(金永相投水圖)」를 그렸다. 1914년 어진 제작에 참여한 내용을 기록한 『봉명사기(奉命寫記)』와 자신의 글과 타인에게 받은 글을 모은 『석강실기(石江實記)』를 남겼다.
[묘소]
채용신의 묘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동촌리 평강 채씨 선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