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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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承東杓 |
영어공식명칭 | Seung Dongpyo |
이칭/별칭 | 운봉(雲峰)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용련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활동 사항]
승동표(承東杓)[1918~1996]의 호는 운봉(雲峰)이며, 1918년 9월 14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정미업에 종사하던 부모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며,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다. 1927년 운전보통학교를 거쳐 1933년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미국 예일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미술교사로 부임한 임용련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936년 조선일보 주최 제1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인 특선을 차지하였고, 임용련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에 있는 일본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였다. 일본미술학교 재학 중 도쿄의 독립미술전람회에 3회 연속 입선하였고, 서울의 조선미술전람회에도 2회 연속 입선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갔다.
일본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하여 스승 임용련의 뒤를 이어 모교인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오산고등보통학교 교사 재직 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1951년 1·4후퇴 때 한국군 장교이던 제자의 도움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 고향에는 부모와 부인, 자녀들이 있었으나 승동표 홀로 남으로 내려와 여동생 승표실이 있는 정읍에 정착하였다.
승동표는 이후 교사 생활을 하며 다수의 작품을 완성하였지만 한 번도 전시회를 열지 않았고, 1982년 완주의 고산중학교 교장으로 퇴직하였다. 승동표는 1957년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조공순을 만나 재혼하여 아들 삼형제를 두었으나 늘 북에 남겨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였고, 1996년 통일이 되면 북의 가족을 찾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작품으로는 제1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 특선작인 「꽃다발이 있는 정물」과 1998년 덕수궁미술관 개관 기념 다시 찾은 근대 미술전 출품작 「자화상」·「정물-꽃」·「여인초상」을 비롯하여 「미루나무가 있는 마을」[1983], 「강가 풍경」[1986] 등 남한에 100여 점, 북한에 60여 점, 일본 도쿄에 10여 점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