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919
한자 天主敎新成公所
영어공식명칭 Sinseong Gongso|Sinseong Catholic Church
이칭/별칭 신성리공소,신성리성당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성길 176-17[신월동 145-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병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893년연표보기 - 신성리공소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03년연표보기 - 신성리공소에서 신성리성당으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신성리성당에서 신성공소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2년 4월 6일연표보기 - 신성공소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0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신성공소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신성공소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신성공소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현 소재지 신성공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성길 176-17[신월동 145-1]지도보기
성격 공소
전화 063-535-1800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월동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시기동성당 소속 공소.

[설립 목적]

신성공소는 정읍 지역을 중심으로 천주교 교리를 전파하고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이끌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정읍의 산골에는 순교자 가족과 후손들이 곳곳에 신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1882년 리우빌(Lucien Nicolas Anatole Liouville)[한국 이름 유달영(柳達榮), 1855~1898] 신부가 태인공소를 포함한 정읍 지역 7개 공소에서 총 220명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성리에는 일찍이 병인박해 순교 성인에 대하여 증언한 황막달레나가 살고 있었고, 1882년 전주에서 김순문(金淳文) 등이 이사를 와서 신자 마을이 만들어졌다. 1893년 신성리공소가 설립되었고, 금구 배재 본당 조조(Moise Jozeau)[한국 이름 조득하(趙得夏), 1866~1894] 신부가 처음으로 신성리공소를 방문하였다. 조조 신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신자가 24명이었다.

1903년 김승연(金承淵)[아우구스티노, 1874~1945] 신부가 부임하여 신성리공소를 본당으로 승격하고 수류성당에서 23개 공소 1,100명의 신자를 분할받았다. 그러나 신성리 본당은 출발부터 개신교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개신교 신자와 지역 주민들이 행패를 부리는데도 관리들이 나서지 않자 신자들은 한국인 신부 대신 서양 신부 파견을 요청하였다. 서양 신부 파견 요청에 따라 프랑스 선교사 미알롱(Aloyoisus Mialon)[한국 이름 맹석호(孟錫浩), 1871~1937] 신부가 부임하여 사태를 정리하면서 1909년 성당 신축에 착수하였고, 1918년 마침내 성전 봉헌식을 가졌다. 1924년 미알롱 신부가 병으로 귀국하고 페셀(Renatus Peschel)[한국 이름 백학로(白鶴老), 1887~1972] 신부가 제3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페셀 신부는 월보를 간행하고 문맹 퇴치를 위한 야학을 운영하는 한편, 정읍 읍내 진출을 위하여 땅을 매입하고 성당을 신축하였다.

페셀 신부 후임으로 1931년에 부임한 한국인 고군삼(高君三) 신부는 정읍 읍내 중심지인 명덕동[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수성동]에 땅을 매입하고 성당과 사제관을 지어 이전하였다. 정읍성당[현 시기동성당]의 설립과 함께 신성리 본당은 다시 신성공소로 격하되었다. 1936년 부임한 서정수(徐庭壽) 신부가 신성리 신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옛 신성리성당을 매각하여 매각 대금을 읍내 성당에 투입하면서 신성리성당은 막을 내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본당과 함께 세운 사제관으로, 한옥으로 개조되어 신성공소 경당으로 쓰이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성공소의 신자들은 자체적으로 공소 예절이나 모임을 하지 않고 시기동 본당으로 미사를 다니고 있다.

[현황]

신성공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 최초의 성당이었고 현재는 신성마을 천주교 신앙의 상징이다. 신성공소는 우리나라 초창기 한옥 형태의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4월 6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가 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2023년 현재 신성공소는 이농과 저출생으로 신자 수가 크게 줄어 10명 안팎의 신자들만 남아 약 7㎞쯤 떨어진 시기동 본당으로 미사를 다니고 있다. 2023년 현재 신자는 7세대 10명이고 공소 회장은 임춘남 베드로이다.

[의의와 평가]

신성공소는 정읍 지역 최초의 본당이라는 긍지와 함께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등록된 공소를 지키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