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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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登川公所 |
영어공식명칭 | Deung-cheon Gong-so|Deung-cheon Catholic Church |
이칭/별칭 | 등천리공소,등내공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원등2길 26[등천리 117-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병구 |
설립 시기/일시 | 189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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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24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 등천공소 인보성체수도회 분원 설치 |
현 소재지 | 등천 공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원등2길 26[등천리 117-1]![]() |
성격 | 종교 시설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등천리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 시기동성당 소속 공소.
[설립 목적]
등천공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등천리 지역을 중심으로 천주교 신앙을 유지하고 천주교 신자들의 생활 터전을 마련하면서 주위에 천주교 교리를 전파하고자 설립하였다.
[변천]
등천공소는 1895년 처음 설립되었을 때부터 1910년까지 ‘등내공소’라고 기록되었다. 등내는 신등, 원등, 군령 지역을 포함한 마을로 정읍에서 남쪽으로 10㎞쯤 떨어져 있다. 1895년 라크루 신부가 처음 방문하였을 때 신자 수는 19명이었는데 꾸준히 증가하여 1910년에는 139명까지 늘었다. 1897년부터는 새로 설립된 목포 본당 드예 신부가 담당하였고, 1903년 이후에는 정읍 신성리 본당 소속이 되었다. 신성리에 본당이 설립될 때 등천리도 경쟁을 벌였으나 실패하였다. 1920년 일제 강점기 총독부의 법에 따라 ‘등천 천주당 포교소’ 설립 허가를 받아 1924년 공소 성당을 짓고 드망즈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가졌다. 1950년 6·25전쟁 때 공소가 불타고, 1957년 19평[약 62.37㎡] 목조 슬레이트 건물로 다시 지었다. 1959년에는 등천공소 출신 고(故) 범석규 마티아 신부가 명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08년 인보성체수도회가 등천공소에 분원을 설치하여 공소 신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1964년 편찬된 『천주교 호남발전사』에 의하면 당시 등천공소 신자 수는 210명[남자 107명, 여자 103명]이나 되었고, 1982년 통계에도 신자 수가 227명[남자 116명, 여자 111명]으로 정읍에서 가장 큰 공소였다. 그러나 이농과 저출생으로 등천공소의 신자 수는 급격히 줄고, 고령화로 인하여 2023년 8월 현재 활동하는 신자는 20여 명에 불과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등천공소는 자체적으로 공소 예절과 레지오마리애 등의 활동은 하지 않고, 본당과 공소에서 주일 미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황]
등천공소는 정읍시 입암면 등천리 일대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와 기도 모임을 갖는 신앙 생활의 중심 공간이다. 2023년 8월 현재 신자는 20여 명이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 오후 3시 시기동 본당 신부가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한다. 그 외 주일과 축일에는 본당으로 미사를 다니고 있다. 2023년 현재 등천공소 회장은 서종식 마르코[78세]인데, 조상들이 충청도에서 박해를 피하여 장성으로 이주하였다가 등천리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박해 시대부터 신앙을 이어 온 등천공소는 장성과 정읍 지역의 천주교 중심지였고 꿋꿋이 공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