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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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蘭植 -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Kim Nan-sik Francisco |
이칭/별칭 | 먹구니[묵동] 공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산21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병구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825년 - 김현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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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827년 - 김난식 출생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873년 - 김난식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873년![]()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888년 - 김현채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888년 - 김현채 무덤 조성 |
현 소재지 |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산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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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무덤 |
양식 | 봉분 |
관련 인물 | 김난식|김현채 |
소유자 | 산림청 정읍 국유림관리소|김해 김씨 천주교 성인공파 |
관리자 | 천주교 전주교구 칠보성당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에 있는 신부 김대건의 동생 김난식의 무덤.
[개설]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는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생 김난식(金蘭植)[프란치스코, 1827~1873]과 조카 김현채(金顯采)[토마스, 1825~1888]의 무덤이다. 박해 시대 피난처였던 회문산 중턱 먹구니[묵동(墨洞)] 공소가 있던 자리이다. 김대건은 1821년 출생하고 김난식은 1827년 태어났는데, 김대건의 족보명이 김지식(金芝植)이어서 형제의 이름을 ‘지란(芝蘭)’으로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난식은 1839년 김대건이 사제가 되기 위하여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고 열두 살에 아버지 성 김제준(金濟俊)[이냐시오, 1796~1839]이 순교하면서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어렵게 살았다. 1845년 김대건이 사제품을 받고 귀국하였으나 1년 만에 순교하자 어머니와 함께 떠돌아다니며 신자들의 도움을 받고 지냈다. 김난식은 안동 김씨와 혼인하였으나 곧 사별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조카인 김현채와 함께 회문산 골짜기 먹구니로 와서 박해를 피하였고, 양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가족도 없이 수도자처럼 살다가 1873년 46세에 세상을 떠났다.
김현채는 김대건의 큰집 7촌 조카로 김난식보다 두 살이 많았다. 김현채는 부모와 함께 박해를 피하여 떠돌아다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40세이던 1865년 어머니마저 잃었는데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전라도 부안 불무동[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을 떠나 먹구니로 와서 김난식과 함께 살았다. 불무동에서 10살 아래인 강 막달레나와 혼인하였는데 서로 동정을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1888년 김현채 사망 후 강 막달레나는 금구 수류성당 아래로 옮겨 살다가 1900년 숨을 거두고 수류에 묻혔다. 김현채와 강 막달레나는 떠돌이 김재화를 거두어 양자로 삼아 결혼을 시켰고, 김재화는 2남 3녀를 두었는데, 족보에는 집안 출신이 아니라 김재화는 올라 있지 않고 부안 등용공소를 일군 김양배(金養培)가 김현채의 계자(系子)로 올라 있다.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가 있는 회문산 일대는 박해를 피하여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의 보금자리였다. 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풀뿌리나 열매, 나물 등으로 연명하면서 화전(火田)을 일구는 일이었다. 논농사가 어려우니 산비탈에 담배를 심고 벌을 치기도 하고, 산속 나무로 숯을 구워 팔다가 숯으로 옹기점도 열었다. 옹기는 신자들의 소중한 생계 수단이었고 옹기점은 천주교 신자들을 모으는 구심점이었다. 신자들은 옹기를 지고 다니며 팔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자 마을을 찾아다니며 신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살아갔다.
[위치]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산215에 있다.
[변천]
1873년 김난식이 사망하여 무덤을 조성하였고 1888년 김현채가 사망하여 무덤을 조성하였다.
[형태]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는 묘역 입구에 ‘김난식과 김현채의 묘’라는 설명문이 하나 세워져 있을 뿐 울타리도 없이 무덤 두 개만 있다. 위쪽에 약간 큰 봉분이 김난식의 묘이고 아래에 있는 작은 봉분이 김현채의 묘이다.
[현황]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는 담장이나 철책이 없어 멧돼지 등 산짐승에 의하여 봉분이 훼손되고는 한다. 천주교 전주교구나 칠보성당에서 여러 차례 성역화를 시도하였으나 무덤이 있는 회문산 일대가 국유림이라 허가를 받지 못하였다. 산짐승을 막을 담장이나 철책이라도 설치하고자 산림청 정읍 국유림관리소에 요청하였으나 역시 불허되었다. 소속 성당인 칠보성당이 잔디를 조성하고 벌초를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는 천주교 신자였던 회문산 일대에 있어 천주교 신자들의 당시 생활 모습을 살필 수 있고, 천주교 박해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