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청리 도요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1336
한자 水淸里 陶窯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674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곽장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0년대 - 수청리 도요지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 수청리 도요지 지표 조사[1997]
소재지 수청리 도요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674 지도보기
성격 가마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개설]

수청리 도요지(水淸里 陶窯址)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마터의 구조와 성격이 파악되지 않았지만, 조선 시대 청자편과 분청사기편, 도짐이[도지미], 가마 벽체편, 불 먹은 흙 등이 수습되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만든 청자, 분청사기는 대부분 문양이 없으며, 일부 조화 당초무늬와 귀얄문이 대접과 접시 내면에 시문되어 있다. 기종으로는 대접과 접시, 완 종지, 잔, 뚜껑, 병, 반구병, 항아리 등이 있다.

[위치]

수청리 도요지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674 수만마을 노적골에 있다. 수만마을은 예로부터 물이 가득 찬다고 하여 붙은 지명이다. 수청리 도요지수청저수지에서 칠보산로를 따라 서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있다. 칠보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 남쪽 기슭 하단부로 대부분 민묘 구역과 농경지로 개간되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0년대 정읍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 때 3기의 분청사기 요지가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다. 1997년 국립전주박물관 주관으로 시행된 전북특별자치도 조선 시대 도요지 지표 조사를 통하여 도요지의 현황과 성격이 상세하게 학계에 알려졌다.

[현황]

1970년대 지방도 제49호 개설과 토석 채취로 수청리 도요지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일부가 민묘 구역에 보존되어 있다. 지표 조사 때 발견된 분청사기는 제작 수법이 조잡하며, 그릇 안쪽 바닥에 ‘공(公)’이라고 선각된 명문이 확인되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 주위까지만 시유된 조질 자기로 색깔이 녹갈색, 회녹색, 녹두색을 띤다. 소성 방법은 포개어 소성하였으며, 가는 규사와 진흙 섞인 내화토 비짐눈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수청리 도요지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까지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곳이다. 1350년부터 서해안에 왜구가 출몰하기 시작하자 줄포만 부근 부안 진서리와 유천리 도요지를 운영하던 도공들이 호남정맥을 넘어 안전한 전북특별자치도 동부로 이동하는 과정에 일부 도공이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산외면 동곡리 일대에 정착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중 일부가 15세기 말 칠보면 수청리로 이주하여 분청사기를 생산하였지만 운영 기간이 길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읍 지역에서 유일하게 조선 전기 분청사기만을 굽던 곳으로 학술적으로 의미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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