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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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丁里 |
영어공식명칭 | Yuj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감곡면 유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진우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유수리(儒秀里)의 유(儒) 자와 정가리(丁佳里)의 정(丁) 자를 따서 유정리(儒丁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태인군 사곡면(師谷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유수리, 정가리, 고잔리(古棧里), 옥단동(玉丹洞), 원당리(元堂里), 원중리(元中里), 북리(北里)와 은동면(銀洞面) 명당리(明堂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감곡면 유정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 유정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감곡면 유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계봉천이 유정리 북쪽에서 원평천에 합류한다. 유정리는 김제 벽골제의 상류에 자리하여 있다. 학일마을에 남아 있는 소지명인 고잔리, 정가마을이 앞모라실[모래실], 학일마을이 뒷모라실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조수(潮水)가 드나든 저지대였음을 알 수 있다. 원평천을 막아서 벽골제를 축조하였는데 벽골제가 무너진 뒤에 유정리는 원평천을 통하여 들어오는 바닷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곶(串)의 형태로 낮은 언덕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유정리의 면적은 4.51㎢이며, 인구는 201가구, 305명[남자 153명, 여자 152명]이다. 유정리는 감곡면의 왼쪽 상단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방교리, 서쪽으로 용곽리, 남쪽으로 오주리, 북쪽으로 김제시 양전동과 접하고 있다.
유정리는 옥신(玉新)마을, 유수(儒秀)마을, 정가(丁佳)마을, 학일(鶴一)마을, 학이(鶴二)마을, 학두(鶴頭)마을 등 6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옥신마을은 옥당동과 새터[新基]가 합쳐진 마을이다. 유수마을은 처음에 ‘유수(流水)’라 하였는데 선비 유(儒) 자와 빼어날 수(秀) 자로 고쳐 ‘유수(儒秀)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여 온다. 정가마을은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와 모래가 남쪽에 먼저 쌓여 앞모래실[후에 모라실이라 부름]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바다 밀물을 따라 들어온 배[舟]가 닻을 내리고 정박한 곳이라 하여 ‘정가(停街)’라 하였는데, ‘정가(丁佳)’로 바뀌었다. 6·25전쟁 전에는 고잔리라고 불리던 학성(鶴成)마을은 1991년 1월 유정교회 들어가는 길을 기준으로 동쪽을 학일마을, 서쪽을 학이마을로 정하여 분리하였다. 학두마을은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 하여 모래골 또는 사동(沙洞)이라 불렀는데 멀리서 마을을 바라볼 때에 학의 머리와 같은 형태여서 ‘학두(鶴頭)’라고 바꾸었다. 학이마을에는 1953년 설치된 감곡역이 있는데, 감곡역은 2008년 여객 운송이 중단되어 무정차역이 되었다. 학두마을에 농업기반공사 감곡출장소가 있다.
유정리에는 유정보건진료소, 천주교옥신공소가 있다. 유정리의 문화유산으로 정가마을 남쪽 논에 높이 150㎝, 너비 40㎝, 두께 15㎝의 입석이 있다. 마을 입구 모정 앞쪽에 있는 행주 은씨 효행비는 1970년에 세워졌으며 강암 송성용이 전면 글씨를 썼다. 학두마을에 1938년 건립한 김인경 효행비가 있다. 옥신마을에서 신석기 시대의 간돌도끼 편이 수습되었다.
유정리의 서쪽으로 호남고속철도가 남북으로 비스듬히 통과한다. 지방도 제701호가 신태인읍과 유정리를 연결하여 김제시로 이어진다. 지방도 제701호는 상당 부분 도로명 호남철로와 겹쳐지며 유정리는 남북으로 비스듬히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