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침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30
한자 倭寇 侵入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허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380년 6월 - 왜구 전라도 정읍현 침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380년 9월 - 왜구 전라도 고부군 침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380년 9월 - 왜구 구 전라도 태산군 침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387년 12월 - 왜구 전라도 정읍현 침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388년 6월 - 왜구 인의현 침입

[정의]

고려 시대 정읍 지역에 일본의 해적 집단이 침입하였던 사건.

[역사적 배경]

왜구(倭寇)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왜구 외에도 『고려사(高麗史)』에는 왜적(倭賊), 왜노(倭奴), 해적(海賊), 해도(海盜), 적구(賊寇), 적선(賊船), 작구(作寇) 등의 표현이 나타난다. 고려 시대에 왜구의 침입의 규모가 커지고 침입 범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은 1350년(충정왕 2)부터이다. 왜구의 침입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해안에서 차츰 북상하여 양광도[고려 시대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경기도 남부, 강원특별자치도 일부,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와 충청도에 이르렀다. 이후 왜구의 침입은 우왕 대에 가서 더욱 심하여졌다. 당시 일본은 막부(幕府)를 지지하는 북조(北朝)와 천황(天皇)을 지지하는 남조(南朝)로 나뉘어 격렬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한 여파로 왜구가 급증하였던 것이다.

[경과]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지역에 왜구가 나타난 것은 1380년(우왕 6) 6월이었다. 왜구가 정읍현(井邑縣)을 침략하였으나 원수(元帥) 지용기(池湧奇)가 왜구를 격퇴하였다. 1380년 9월에는 고부(古阜)와 태산(泰山), 즉 지금의 태인 지역에 왜구가 침입하였는데, 전라도병마사 유실(柳實)이 막아 나섰으나, 김현백(金玄伯)과 민중행(閔中行)이 전사하는 등 고려군이 패배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고부와 태인 그리고 흥덕 등이 노략질을 당하고 관청이 불타는 등의 피해를 입고 말았다. 1380년 9월에 침입한 왜구들은 전주성까지 함락시켰다. 왜구는 1387년(우왕 13) 12월에 정읍현, 1388년(우왕 14) 6월에는 김제(金堤), 만경(萬頃)과 함께 인의현(仁義縣)[현 정읍시 태인면 일대]에 침입하였다. 1387년의 침입 때는 고부군 향리 이석(李碩)의 딸이자, 낭장(郞將) 이득인(李得仁)에게 시집가서 정읍현에서 살던 이씨, 그리고 판사를 지낸 안방혁(安邦奕)의 딸이자, 전의정(典醫正) 경덕의(景德宜)에게 시집가서 정읍현에 살던 안씨가 왜구에게 살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결과]

1389년(창왕 원년)에 전라도도관찰사에 임영된 노숭(盧嵩)의 졸기가 『태종실록(太宗實錄)』에 실려 있는데, 왜구가 끊이지 않아 바닷가의 주군이 텅 비게 되었다고 하면서 백성들의 조세를 3년 동안 면제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정읍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에 왜구의 침입이 지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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