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53
한자 六·二五戰爭
영어공식명칭 Korean War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연표보기 - 6·25전쟁 발발
관련 인물/단체 차일혁

[정의]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역사적 배경]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적인 공격으로 남한과 북한 간 전쟁이 시작되었다. 개전 초기에는 북한군의 총공격으로 대구와 부산 일원을 제외한 전 국토를 북한이 점령하게 되었다. 이에 유엔군이 참전함으로써 6·25전쟁은 국제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뒷날 중국군이 참전하여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이 더욱 확대되었는데, 당시 대구와 부산을 근거지로 반격전을 벌이던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서울을 탈환하고 국군 일부가 압록강 변까지 진격하였다. 이에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10월 25일 유엔군이 총퇴각하고 소련이 휴전을 제의함으로써 휴전 교섭에 들어갔다. 남한에서는 휴전에 반대하면서 북진 통일을 주장하였으나 협상은 계속되었다. 미국이 북진 통일 제의를 즉각 받아들임으로써 난항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이 휴전에 들어갔다.

[경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도 6·25전쟁 동안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수많은 좌우익의 대립과 고통을 겪었다. 특히 정읍시 산내면 일대의 회문산(回文山)이 좌익 무장 유격대인 빨치산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됨으로써 피해가 매우 컸다. 빨치산은 관공서를 습격하거나 경찰, 군인 등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빨치산을 물리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車一赫) 경무관의 칠보수력발전소내장사 탈환 작전이었다.

정읍은 6·25전쟁 이전인 미군정 시절부터 ‘야산대(野山隊)’라 불리는 공비들의 출몰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야산대는 전쟁 초기에 미처 피란 가지 못한 손예환 정읍경찰서장의 목을 잘라 경찰서 출입문에 걸어 놓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국군이 진주로 후퇴할 때에는 경찰서 유치장 건물에 우익 인사를 가두어 놓은 채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400여 명을 살상하기도 하였다.

정읍은 전북특별자치도에서도 으뜸가는 곡창 지대이며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지만 좌우 대립이 심각해지면서 민심이 흉흉하게 되었다. 정읍은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빨치산의 세력이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특히 내장산 아랫마을 월영의 솔티숲빨치산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솔티숲빨치산의 보급로로 습지가 있는 봉우리에서 망을 보다가 국군이 온다는 신호를 하면 빨치산들이 솔티숲으로 숨어들었다. 솔티숲 길을 통하여 회문산과 지리산, 김제, 고창, 정읍, 부안까지 약탈을 하였고, 반역자로 몰린 사람들을 솔티숲에서 인민재판으로 처형하기도 하였다.

[결과]

6·25전쟁은 민족 통일을 표방한 전쟁이었으나 오히려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하고 남북한 분단 체제를 한층 더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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