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54
영어공식명칭 Partizan|Ppalchis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1년 1월 13일 - 빨치산 토벌 중 칠보수력발전소 탈환 작전 명령 하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1년 4월 10일 - 빨치산 내장산 탈환을 위한 정읍 출동 명령 하달
성격 비정규군
관련 인물/단체 차일혁

[정의]

6·25전쟁 당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에서 활동한 공산 비정규군.

[개설]

빨치산은 보통 서구 사회에서는 게릴라(Guerrilla), 코만도(Commando), 레인저(Ranger), 스페셜 포스(Special Forces) 등과 같은 개념을 가진 비정규군을 뜻한다. 우리 역사에서는 6·25전쟁 전후에 지리산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던 좌익 유격대를 뜻한다. 6·25전쟁 당시 전라북도 정읍 지역에서는 차일혁(車一赫)[1920~1958] 경무관이 이끄는 경찰 부대가 빨치산의 지배하에 있던 칠보수력발전소내장산 지역을 탈환하고 토벌하는 작전을 펼쳐 독보적인 전공을 세운 바 있다.

[경과]

빨치산과 관련하여 정읍 지역에서 있었던 전투로는 칠보수력발전소 탈환 작전과 내장산 탈환 작전을 들 수 있다. 차일혁의 부대가 칠보수력발전소 탈환 작전을 명령받은 날은 1951년 1월 13일이었다. 50일간에 걸친 작전 끝에 경찰 병력 75명으로 빨치산 2,500명을 물리치고 칠보수력발전소 안에 갇혀 있던 전투 경찰 175명을 구출하였다. 아울러 독고봉에서 활동하던 빨치산 부대인 ‘기포병단’, 그리고 산내면 능교리 뒷산에 본거지를 둔 ‘카추사병단’과 ‘번개병단’을 소탕하였다. 칠보수력발전소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있는 유역 변경식 발전소이다. 이렇게 국가 시설 제1급인 칠보수력발전소를 지켜 냄으로써 남한 일대에 전기를 송전할 수 있게 하였다. 칠보수력발전소 탈환 작전에서 차일혁 부대는 적 사살 68명을 비롯하여 M1 소총 3정, 소련식 장총 2정, 수류탄 5발, 실탄 600발을 획득하는 전과를 올렸다. 칠보수력발전소 탈환 작전에서 희생된 65명의 명단이 칠보수력발전소 옆 충혼탑에 새겨져 있다. 칠보충혼탑은 전국 경찰 역사 순례길 41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어 있다.

차일혁 부대가 내장산을 탈환하기 위하여 정읍으로 출동 명령을 하달받은 날은 1951년 4월 10일이었다. 정읍에 도착한 차일혁 부대는 정읍여자중학교에 지휘소를 설치하였다. 차일혁 부대는 4월 13일 저녁 내장산 골짜기로 잠입하였다. 내장산에 숨어 있는 빨치산의 총인원은 알 수 없었다. 차일혁은 내장사를 공격하는 중대는 절대 내장사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특별 지시를 하였다. 하지만 대웅전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않는 빨치산들에게 겁을 주기 위하여 지른 불이 오히려 화마가 되어 내장사는 순식간에 불에 타 버렸다.

[결과]

결과적으로 내장사는 보호하지 못하였지만 차일혁은 소각될 위기에 처한 쌍계사(雙溪寺)·천은사(泉隱寺)·선운사(禪雲寺) 등의 고찰을 전쟁 중에 보호함으로써 ‘문화 경찰’이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다. 차일혁 경무관은 2014년 9월 ‘이달의 호국 인물’로 선정되었고, 2017년 9월 29일에는 전북서부보훈지청의 주최로 내장산문화광장 내에 추모 흉상이 세워졌다. 2019년에는 차일혁을 기념하는 ‘영원우표’가 발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빨치산을 토벌한 차일혁 경무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대단하다. 6·25전쟁 영웅, 호국의 인물, 대한민국을 수호한 자유 수호자 18인, 전투를 가장 잘한 빨치산 토벌대장, 대한민국의 후방을 안정시킨 전투 경찰, 문화훈장을 받은 유일한 경찰 등으로 평가된다. 차일혁 경무관은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포함한 무공훈장 6개, 무공포장 1개, 종군기장 2개, 공비토벌기장 2개를 받았다. 차일혁이 빨치산 토벌과 관련하여 받은 훈장, 포장, 종군기장을 합치면 모두 11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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