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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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井邑 普化里 石造二佛立像 |
영어공식명칭 | Two Stone Standing Buddhas in Bohwa-ri, Jeongeup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 110-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김미란 |
출토|발굴 시기/일시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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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3월 9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 보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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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불상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 | 258㎝[우측 불상]|227㎝[좌측 불상]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정읍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 불상
[개설]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井邑 普化里 石造二佛立像)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낮은 야산의 말단부에 있는 이불입상이다. 마을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본래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주민들이 옮겨 세웠다고 한다. 1982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단이 발견할 당시에는 2구 모두 광배가 결실된 채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한다. 1984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단이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 보존 대책의 일환으로 불상 주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한 후 바로 세웠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은 오른쪽 불상이 왼쪽 불상에 비하여 규모가 큰 편이며, 두상을 제외하면 형태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다. 그러나 왼쪽 불상은 오른쪽 팔이 결실된 상태이며, 대좌도 파손이 심한 편이다.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의 얼굴은 눈이 패이고 코와 입이 마모되어 표정을 살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으나,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 아기 같은 체구, 특징 있는 옷 차림새 등에서 백제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은 1987년 3월 9일 보물 제91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형태]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은 마을 주민들이 ‘부처댕이’로 부르고 있는 얕은 구릉에 있다. 불상과 대좌가 일체형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2구의 불상 중 오른쪽 불상이 규모가 좀 더 크고, 왼쪽 불상이 작다. 오른쪽 불상은 광배가 깨어져 나가고 흔적만 남은 상태이며, 불상의 전체 높이는 258㎝이다. 불상의 수인은 왼손이 시무외인이고, 오른손은 가볍게 아래로 내리고 있는데 작은 병 같은 것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들어 올린 왼손은 손바닥을 밖을 향하도록 펴서 손가락이 땅 쪽으로 향하도록 하였는데, 팔에는 대의를 걸치고 있다. 대의의 옷주름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두상은 민머리인 소발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인 육계가 커다랗게 솟아 있다. 얼굴은 마모가 심하여 표정을 볼 수 없을 정도인데, 두 눈은 인위적으로 파내진 상태이고 코와 입 또한 인위적으로 갈려진 상태이다. 옷차림은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대의를 두른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대의 안에는 승각기(僧脚岐)와 아래치마인 하군(下裙)도 보인다.
왼쪽 불상은 전체 높이가 227㎝이다. 오른팔이 결실되어 정확한 수인을 알 수 없지만, 왼팔 수인은 오른쪽 불상과 같은 시무외인이다. 하지만 손의 위치는 조금 달라서 가슴보다는 허리에 가깝게 들어 올렸다. 옷차림 또한 오른쪽 불상과 같은 우견편단이다. 두상 또한 소발에 육계가 큼지막하게 표현되었다. 불상과 대좌는 일체형인데 대좌의 파손 정도가 매우 심하다.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은 1991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보호각을 세워 봉안하였는데, 2구의 불상 대좌를 얇은 방형의 판석에 세워 시멘트로 접착하였다.
[특징]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화강암으로 된 백제 불상으로 불의가 우견편단인 점이다. 옷주름은 부드러우면서도 소박한 편인데 이러한 점은 어깨나 손발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른팔이 없어진 작은 불상은 좀 더 앳된 것이 눈에 띤다. 이처럼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은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 아기 같은 체구, 우견편단의 불의(佛衣)가 백제 후기 불상의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은 7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최남단에 조성된 화강암 석불이라는 점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의 착의법을 보여 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두 불상은 같은 조각 양식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지만, 오른쪽 불상이 왼쪽 불상보다 약간 커서 이불병존상(二佛竝存像)을 염두에 두고 조성된 것은 아닌 듯 하다. 두 불상은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육계가 솟아 있는데, 이는 백제 시대의 불상인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흡사하다. 또한 우견편단의 착의법은 신라 지역의 삼곡(三曲) 자세 금동제여래입상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하였던 형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의 발견으로 백제에서도 일찍부터 우견편단 착의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