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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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普化里 |
영어공식명칭 | Bohw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래철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본래 ‘하늘의 음덕이 널리 사람들에게 미친다’는 뜻에서 보화(普化)라고 한 데서 보화리(普化里) 명칭이 유래되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고부군 성포면(聲浦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보화리, 와석리(臥石里), 계동(桂洞), 입석리(立石里)와 원두리(元斗里), 하정리(下井里) 및 소정면(所井面) 춘수리(春水里), 흥덕군(興德郡) 일동면(一東面)의 금평리(錦坪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소성면 보화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면서 전라북도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로 개편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보화리는 구릉지와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원천저수지에서 시작하여 북향하는 소성천(所聲川)과 주동저수지에서 시작하여 서향하는 부안천(浮雁川)이 합류한다.
[현황]
2023년 5월 현재 보화리의 면적은 2.69㎢이며, 인구는 198가구, 330명[남자 165명, 여자 165명]이다. 보화리는 소성면 중앙부의 서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등계리, 서쪽으로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남쪽으로 용정리, 북쪽으로 기린리와 접하고 있다.
보화리에는 삼거(三巨)·보화(普化)·와석(臥石)·대성(大成)마을이 있다. 삼거마을은 기관 및 상가가 형성되어 생활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1914년 소성면이 출범할 때 면사무소가 처음에는 만수동에 있었으나 1919년 삼거마을의 현재 황토현농협 소성지점 자리로 이전하였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 면 청사가 화재로 전소되었고, 1959년 8월 등계리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보화마을은 계당산[일명 꼬드레산] 자락이 마을 뒤편을 감싸고 있는 농촌 마을이며, 벼농사를 주로 한다. 마을 남쪽으로 두 그루의 느티나무 노거수가 있는데,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이라 부르며 정월 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냈다. 와석마을은 마을 안에 ‘누운 돌’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누운 돌이 원래 마을 뒤편에 있었으나, 현재 마을회관 앞으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설날마다 11시가 되면 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합동으로 세배를 하는데, 65세 이상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세배를 받고 덕담을 나누는 미풍양속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대성마을은 계당산 서쪽 기슭에 있는 마을로, 대성(大成)마을은 큰 동네인 대안리(大安里)와 작은 동네인 신성리(新成里)를 합하여 이루어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주로 논농사와 밭농사를 생업으로 하고 있다.
보화리에는 향로재(鄕老齋)가 있고, 소성우체국, 황토현농협 소성지점, 교육 기관으로 소성초등학교 등이 있다. 또한 문화유산으로 백제 시대 양식의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井邑 普化里 石造二佛立像)[보물]이 있다. 그리고 1985년 원광대학교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정읍 보화리 석조이불입상 뒤편 구릉지에서 기원전 3세기경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원형의 수혈식 주거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보화리는 북쪽으로 국도 제22호가 관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