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67
한자 井邑 藥水庵 塑造觀音菩薩坐像
영어공식명칭 Jeongeup Yaksuam Sojo Gwaneumbosal Jwasang|Earthen Se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of Yaksuam Temple in Jeongeup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산로 249-21[금붕동 1087-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미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928년 5월 10일연표보기 -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제작
이전 시기/일시 6·25전쟁 중 -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조암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약수사로 이운
이전 시기/일시 2006년 -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약수사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금붕동 1087-3 약수암으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4월 30일연표보기 -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97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현 소장처 정읍 약수암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산로 249-21[금붕동 1087-3]지도보기
원소재지 임실 성조암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격 불상
재질 소조
크기(높이) 높이 49㎝[높이]|35㎝[무릎 폭]
소유자 약수암
관리자 약수암
문화재 지정 번호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금붕동 약수암에 있는 일제 강점기 불상.

[개설]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井邑 藥水庵 塑造觀音菩薩坐像)의 문화재 지정 신청을 위한 복장 조사 중 발견된 조성 발원문에 따르면,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숭림사에서 시왕상 중수와 나한상 개채(改替) 시에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조암에 봉안하기 위하여 1928년 5월 10일 제작되었다. 이후 6·25전쟁 중에 성조암이 소각되면서 읍내로 이운되어 약수사에 봉안되었다가, 2006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금붕동 약수암으로 다시 옮겨졌다. 내부에 머리부터 바닥까지 사각형의 긴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어깨와 무릎 등에 얇은 나무 조각으로 형태를 잡은 후 그 위에 흙을 붙여 모양을 만든 후에 금박을 붙인 소조불이다. 머리와 가슴 내부에 있는 사각형의 공간은 복장을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4월 30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9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형태]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 49㎝, 무릎 폭 35㎝의 중소형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상반신에 결가부좌한 자세를 하고 있다. 계란형의 얼굴은 턱 선이 둥글고, 눈꼬리가 올라간 작은 눈, 콧등이 둥근 긴 코, 살짝 올라간 작은 입술을 표현하여 자비로운 인상이다. 머리부터 다리까지 장포를 걸치고, 어깨에 보발(寶髮)이 길게 늘어져 있다. 양 어깨를 감싼 장포는 배 부분에서 꽃무늬 장식으로 여미고, 가슴 부분에 상단을 평평하게 접은 승각기를 입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촉지인을 결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배 앞에 올려놓았다. 왼손 바닥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을 보면 원래 지물인 정병이 꽂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양 무릎을 덮은 대의 자락은 자연스럽게 높낮이가 있는 옷주름이 펼쳐져 있다.

[특징]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한 승려 보응(普應) 문성(文性)[1867~1954]은 근대 및 현대 불상의 조성과 중수 등에 많이 참여한 승려이다. 보응 문성은 불상을 조성할 때는 전통적인 양식의 불상을 만들었지만, 전신에 장포를 두른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은 19세기 말에 중국에서 들어온 화본(畵本)이나 20세기 전반 일본에서 제작된 도자상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장의로 완전히 이마를 덮고, 보관을 쓰지 않았으며 화불이 없는 점 등은 보응 문성이 만든 보살상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선 후기에서 근대 사이에 성행한 관음보살상의 도상을 계승하고 있으며,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불상 조성에 관련된 내용이 명확하다. 근대에서 현대 불상 양식으로 변화되는 과도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 공예사적으로 의의가 크며, 정확한 조성 시기를 알고 있는 불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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