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신잠선생영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77
한자 泰仁申潛先生影像
영어공식명칭 Wooden Statues of SinZam Teacher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정읍북로 1193[태창리 425]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전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3년 6월 23일연표보기 - 태인신잠선생영상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4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태인신잠선생영상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태인신잠선생영상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로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태인신잠선생영상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
현 소장처 태인면사무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정읍북로 1193[태창리 425]지도보기
성격 조각상
재질 나무
크기(높이,길이,너비) 85.6㎝[신잠상 높이]|76.5㎝[부인상 높이]|58.5㎝[큰아들상 높이]|55.5㎝[시녀상 높이]|61.5㎝[호랑이상 높이
소유자 정읍시
관리자 정읍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조선 시대 신잠 조각상.

[개설]

영상(影像)은 부처나 사람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나타낸 것으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태인신잠선생영상(泰仁申潛先生影像)은 조선 중종 때 관리였던 신잠(申潛)[1491~1554]과 관련된 영상으로 추측된다. 신잠은 1543년(중종 38) 태인현감으로 부임하여 1549년(명종 4)까지 6년간 동서남북의 4학당(學堂)을 세워 유학을 진흥시키는 등 많은 치적과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신잠이 강원도 간성군수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태인현 백성들은 선정비(善政碑)를 세우고 성황산에 당우(堂宇)를 지어 신잠의 조각상과 신잠의 부인상, 큰아들상과 시녀상, 호랑이상까지 만들어 함께 봉안하여 신잠을 기념하였다. 태인현 사람들은 매년 정월 삭망(朔望), 즉 1일과 15일에 신잠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며 태인현의 태평과 국세를 상납할 때에 풍랑과 도적 같은 나쁜 일이 없기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5구의 영상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을 성황당이라고 불렀는데, 1950년경에 낡아 허물어져서 현재는 태인면사무소에 보관되어 있다. 태인신잠선생영상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형태]

태인신잠선생영상의 크기는 신잠상이 85.6㎝, 부인상 76.5㎝, 큰아들상 58.5㎝, 시녀상 55.5㎝, 호랑이상 61.5㎝이다. 신잠상은 사모관대에 흉배를 부착한 관복을 입고 양손을 포개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부인상은 쪽진 머리에 녹색 계열 두루마기를 두르고 붉은색의 치마를 입고 합장하여 의자에 앉아 있다. 큰아들은 흉배가 없는 관복을 입고 신잠처럼 손을 포갠 모습이며, 머리를 양쪽으로 동그랗게 묶고 있어 아직 상투를 하지 않은 모습이다. 시녀는 붉은색 저고리에 청색 치마를 입었고, 흰색 허리 끈을 착용하고 손은 마주 잡은 모습이다. 모두 얼굴을 하얗게 칠하였고, 눈·코·입을 검은색으로 표현하였다.

[특징]

불상의 형식을 빌어 신잠의 가족을 나무로 조각한 것으로 얼굴은 모두 하얗게 칠하였다. 붉은색으로 관복을 칠한 것은 태인신잠선생영상 제작 시기의 불상 및 불화의 색칠에 있어서 적색, 녹색, 청색, 백색이 대표적인 안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신잠과 부인, 아들의 의상 표현에서 목 부분에 레이스 같이 표현을 하고 있는 점은 태인신잠선생영상이 조각된 시기를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불상의 여러 표현들과 같은 모습이 보이고 있으며, 특히 옷의 표현에서 목 주위에 레이스처럼 상의(上衣) 밖으로 표현한 것은 제작 당시의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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