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81
이칭/별칭 고인돌,지석묘,청동기 시대,만수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만수리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변희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2년 - 만수리 고인돌떼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 만수리 고인돌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 만수리 고인돌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 - 만수리 고인돌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완료
소재지 만수리 고인돌떼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만수리 지도보기
성격 고인돌
양식 기반식
크기(높이,지름) 길이 400㎝, 너비 204㎝, 두께 164㎝[1호 고인돌 덮개돌]|227㎝, 너비 131㎝, 두께 76㎝[2호 고인돌 덮개돌]|길이 362㎝, 너비 234㎝, 두께 138㎝[3호 고인돌 덮개돌]|길이 208㎝, 너비 250㎝, 두께 170㎝[4호 고인돌 덮개돌]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만수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위치]

만수리 고인돌떼(萬里壽 고인돌떼)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만수리 상만마을에서 만일사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있다. 총 15기의 고인돌이 2열로 무리지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만수리 고인돌떼는 2006년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15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어 ‘상만리 지석묘군’으로 처음 알려졌다. 이후 정읍~신태인[1공구] 도로 건설 구간 중 도로에 포함되는 고인돌 4기에 대하여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6년과 2008년~2009년에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덮개돌 아래에서 매장 시설 등의 추가 유구와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1호와 2호 고인돌에서 주형(舟形)의 고임돌이 확인되었다.

[형태]

만수리 고인돌떼는 총 15기가 남아 있는데, 상만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새마을 사업 당시 농로와 밭이 조성되면서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15기의 고인돌떼는 마을에서 산으로 오르기 위한 농로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열을 지어 자리 잡고 있으나 정연하지는 않다. 고인돌은 일부 고임돌이 확인되어 바둑판식 고인돌로 보인다.

고인돌의 크기는 덮개돌 규모로 볼 때, 서쪽의 고인돌 떼가 크다. 조사가 이루어진 1호 고인돌은 장방형의 덮개돌과 8매의 고임돌을 가진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400㎝, 너비 204㎝, 두께 164㎝이며, 무게는 22톤이다. 덮개돌 하부에는 8매의 고임돌이 방형 형태로 열을 이루며, 이 중 2매는 각각 높이가 60㎝, 53㎝인 주형(舟形) 고임돌이다. 하부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2호 고인돌은 덮개돌이 이동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27㎝, 너비 131㎝, 두께 76㎝이며, 무게는 3톤이다. 3호 고인돌은 남아 있는 2개의 고임돌 형태로 보아 바둑판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362㎝, 너비 234㎝, 두께 138㎝이며, 무게는 9톤이다. 4호 고인돌은 바둑판식 고인돌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08㎝, 너비 250㎝, 두께 170㎝이며, 무게는 11톤이다. 덮개돌 하부에서는 너비 60㎝ 이상의 고임돌 2개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현황]

발굴 조사가 완료된 4기의 고인돌은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새로 생긴 도로 인근에 원형 그대로 이전되어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만수리 고인돌떼는 총 15기의 고인돌이 무리를 이루고 있어, 정읍시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1호 고인돌에서 주형 고임돌이 확인되었는데, 주형 고임돌을 갖춘 고인돌은 그 분포 범위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과 부안군 일부 지역 그리고 전라남도 영광군·함평군·무안군 및 장성군 삼계면 지역에 한정된 분포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정읍시 지역에서도 확인된 점은 학술적으로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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