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92
한자 金寺洞土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산26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원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1년 4월 1일연표보기 - 금사동토성 전라북도 기념물 제55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금사동토성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금사동토성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
현 소재지 금사동토성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산26 지도보기
성격 토성
양식 포곡식
크기(높이,길이,둘레) 2,365m[외성 둘레]|약 2,394m[내성 둘레]
면적 355,396㎡
소유자 정읍시
관리자 정읍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응봉산에 있는 삼국 시대 포곡식 산성.

[개설]

금사동토성(金寺洞土城)은 높이 229.3m의 응봉산(鷹峰山) 정상부와 높이 206m의 산봉우리 등 2개의 봉우리와 북쪽으로 흐르는 두 산줄기, 그리고 계곡을 감싸면서 내성과 외성을 둔 삼국 시대 포곡식 석성이다. 금사동토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百濟本記)」에 전하는 백제 건국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 36년(18)의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으로 비정되기도 하며, 백제 후기 중방 고사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금사동토성은 1981년 4월 1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출간한 『문화유적총람』 전라북도 편에 금사동토성에 대하여 ‘매봉재토성(土城)’으로 소개하면서 “고대 부족 사회 시대 고부(古阜)의 영주 이씨(瀛州 李氏)와 부안(扶安)의 청도 김씨(淸道 金氏)들의 씨족 싸움터로 고부의 영주 이씨 측에서 토성을 쌓았다고 전(傳)하기도 하고, 고부의 영주 이씨 측의 무기고지(武器庫址)라고도 전한다. 은선리의 동남방(東南方) 약 1,635m의 응봉산의 북면(北面)에 있으며, 토성은 흔적만 있다”라고 적혀 있다.

[위치]

금사동토성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산26 일원의 응봉산의 북쪽 2개의 산줄기와 두 능선의 계곡부를 감싼 산성이다. 영원면 은선리 325-2에 있는 은선제 남쪽에서 계곡을 따라 400m 정도 오르면 금사동토성의 북문 터에 이른다. 북문 터에서 각각 동서쪽으로 산 능선부에 오르면 응봉산 정상부를 향하여 산줄기를 따라 성벽이 있다.

[형태]

금사동토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된다. 외성은 응봉산에서 북쪽과 북서쪽의 두 산줄기를 따라 축성되어 있으며, 평면 형태는 각진 긴 네모 형태에 가깝다. 내성은 북서쪽 산줄기의 북쪽 사면부 지형을 따라 축성되어 있는데, 동쪽과 서쪽이 좁고 긴 형태를 하고 있다. 외성의 남변은 응봉산의 능선을 따라 석축되어 있고, 동쪽 성벽과 서쪽 성벽은 응봉산에서 각각 북쪽으로 산줄기 정상부를 따라 내려가다가 높이 50m 지점에 이르러 계곡을 감싼다. 외성의 둘레는 2,365m이다. 내성의 남쪽 성벽은 외성의 남쪽 성벽과 같으며, 동쪽 성벽은 북사면 중복(中腹)을 감은 토루(土壘)와 회랑도(廻廊道)[순찰로]가 높이 110~180m 지점에 지형을 따라 자유 곡선형을 이루며 서쪽 성벽의 산 중복 지점과 연결된다. 내성의 둘레는 약 2,394m이다. 한편 토성의 동쪽 봉우리에는 대지를 이루고 있어 상성(上城)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 터[城門址]는 2개소, 수구 터[水口址]는 4개소가 있다. 남문 터는 남쪽 성벽의 두 봉우리의 중간 지점에 있으며, 북문 터는 북쪽 성벽의 가운데 지점인 계곡 주변에 해당한다. 수구 터는 외성의 북문 터 주변에 있으며, 내성 북쪽 성벽의 곡부 3곳에 우물 터 3개소와 함께 있다. 유물은 남쪽 성벽의 두 산봉우리의 대지에서 백제계의 토기편과 기와편 등이 확인되었다.

[현황]

금사동토성은 계곡과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성벽의 석축 흔적은 대부분 무너졌거나 수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능선 상단부는 인위적으로 산 경사면을 깎아 만든 토루가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금사동토성은 백제 후기의 5방성[동방 득안성, 남방 구지하성, 서방 도선성, 북방 웅진성, 중방 고사성] 가운데 중방 고사성의 터로 추정되어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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