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496
한자 泰仁東軒
영어공식명칭 Taein Government Office
이칭/별칭 청령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동헌길 24[태성리 351-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선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44년~1549년 - 태인동헌 건립 추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6년 - 태인동헌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4월 2일연표보기 - 태인동헌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7년~1978년 - 태인동헌 해체 보수 공사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3년 - 태인동헌 보수[1993]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4년 - 태인동헌 보수[2004]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2년 - 태인동헌 정밀 실측 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태인동헌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태인동헌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태인동헌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현 소재지 태인동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동헌길 24[태성리 351-9]지도보기
성격 관아
정면 칸수 6칸
측면 칸수 4칸
소유자 정읍시
관리자 정읍시
문화재 지정 번호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태인현의 동헌.

[개설]

태인(泰仁)은 1409년(태종 9) 태산군인의현을 합쳐 유래한 지명이다. 1895년 지방 관제 개편에 따라 전주부 태인군에 속하였으며, 1896년 전라북도 태인군이 되었다. 1914년 정읍군 태인면으로 11개의 동리를 관할하다가 1963년 일부 동리를 편입하면서 15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으며, 1983년 백산리신태인읍으로 편입되었다. 태인동헌(泰仁東軒)은 조선 시대 태인현 관아의 중심 건물로 수령이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정면에는 ‘청령헌(淸寧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백성을 잘 다스리고 보살핀다”라는 의미이다. 태인동헌은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위치]

태인동헌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동헌길 24[태성리 351-9]에 있다. 북쪽에는 성황산[태인면]이 있고, 북동쪽에는 태인초등학교가 인접하여 있으며, 500m 이내에 정읍 피향정태인향교 등이 있다.

[변천]

태인동헌신잠(申潛)[1491~1554]이 태인현감으로 재임할 때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신잠의 비문과 문집에는 동헌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아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1977년 보수 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에 1816년(순조 16)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공사를 담당하던 기술자인 도편수는 승려 두징(斗澄)이었다. 태인동헌은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태인군이 정읍군에 통합되면서 빈 건물로 남았다. 1914년 태인초등학교[당시 태인소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사로 사용되었으며, 이때 외관과 내부 공간이 변화되었다. 1975년 전라북도 교육위원회의 결정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197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78년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1993년 기단을 해체 보수하고 계단을 설치하였다. 2004년 동헌 주변에 삼문, 협문, 담장을 설치하는 등 정비하였다.

[형태]

태인동헌은 뒤쪽이 높고 앞쪽이 낮은 야트막한 경사지에 세워져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4칸이다. 앞쪽에는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여 방과 대청으로 연결되었다. 안쪽은 서쪽부터 다락 1칸, 방 2칸, 대청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쪽 칸은 서쪽부터 아궁이 3칸, 봉당[흙바닥] 1칸, 높은 마루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쌓았으며, 주춧돌은 사각형과 팔각형으로 비교적 잘 다듬은 것을 사용하고,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지붕부를 받치면서 장식성을 높이기 위하여 기둥 위에 짜 올린 공포는 1출목 이익공 형식이다. 가구 구조는 고주 2개와 도리 7개를 사용한 2고주 7량가이다. 대들보 위에는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받쳤으며,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는 구조이다. 지붕은 앞에서 볼 때 여덟 팔자(八字)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며, 대청 상부는 우물천장으로 마감하였다.

[현황]

1872년 태인현 지도를 보면 태인현 관아에는 태인동헌 외에도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를 비롯하여 다양한 건물들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태인동헌만 남아 있으며, 앞에는 2004년 세운 삼문이 서 있다. 동헌 주변으로는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출입을 위한 협문이 설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태인동헌은 조선 시대 지방 관아 중에서 비교적 옛 모습이 잘 남아 있는 건물이다. 조선 시대 동헌의 건축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건물로 내부 공간을 다양하게 구성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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