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08 |
---|---|
한자 | 內藏寺址 |
영어공식명칭 | Naejangsaji/Naejangsaji Archeological sit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20-74[내장동 57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김미란 |
건립 시기/일시 | 660년 - 내장사 창건 |
---|---|
폐지 시기/일시 | 1951년 - 내장사 전소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16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내장사지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내장사지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 |
소재지 | 내장사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20-74[내장동 576]![]() |
성격 | 사지 |
지정 면적 | 9.851㎡ |
소유자 | 내장사 |
관리자 | 내장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동에 있는 삼국 시대 절터.
[개설]
내장사(內藏寺)는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이다. 현재는 내장사지에 벽련암이 들어서 있다. 내장사는 백련사로도 불렸으나 조선 후기에는 벽련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는 영은사지에 있는 내장사의 산내 암자인 벽련암이 자리하고 있다.
[변천]
내장사지는 내장산에 있는 옛 내장사 터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백련사는 내장사라고도 이르며 내장산에 있다”라고 하였다. 백련사는 660년(의자왕 20) 선사 유해가 세웠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백련(白蓮)’을 ‘벽련사(碧蓮寺)’로 바꾸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1925년 선사 학명(鶴鳴)이 아미타불을 봉안한 극락보전을 고쳐 짓고, 승려들이 생활하던 요사채와 도량 건물인 선원을 세웠으나 역시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이후 승려 향봉과 진공이 복원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중창되었다. 벽련암은 내장사의 산내 암자이지만 주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불전 등 여러 채의 당우가 있어 사세가 크다.
[위치]
내장사지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20-74[내장동 576]에 있다. 현재는 벽련암이 있는데, 내장사 일주문 초입에서 오른쪽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현황]
내장사지에는 현재 벽련암이 중창되어 영은사지에 있는 오늘날의 내장사에 버금가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절터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탑식으로 된 부도가 남아 있으며, 뒷쪽 암벽에 몽련당(夢蓮堂) 김진민(金鎭珉)의 ‘석란정(石蘭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내장사지는 폐사지로 남아 있지 않고 계속적으로 사찰이 운영되면서 명맥을 잇고 있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