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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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一齋 李恒 墓碑 |
영어공식명칭 | Tombstone of Yi H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산73-1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99년 - 이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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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76년 - 이항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576년경 - 일재 이항 묘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3월 31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일재 이항 묘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일재 이항 묘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일재 이항 묘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
현 소재지 | 일재 이항 묘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산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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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이항 |
재질 | 화강암|대리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67㎝[높이]|67㎝[폭]|20㎝[두께] |
소유자 | 성주 이씨 문중 |
관리자 | 정주 이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에 있는 일재 이항의 조선 전기 묘비.
[개설]
일재 이항 묘비(一齋 李恒 墓碑)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에 일재(一齋) 이항(李恒)[1499~1576]의 묘소 앞에 건립한 묘비이다. 일재 이항 묘비는 2017년 3월 31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건립 경위]
일재 이항 묘비는 1576년 이항이 사망한 이후, 성리학자 이항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위치]
일재 이항 묘비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산73-11에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1길 174-23[마정리 833]에 있는 재실에서 남쪽으로 논을 건너 150m 정도 이동하면 야산에서 산능선을 따라 성주 이씨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맨 위에는 이식(李湜)의 묘가 있고, 이항의 묘는 이식의 묘 아래쪽에 있다.
[형태]
일재 이항 묘비는 묘소 남쪽에 있으며, 좌대가 상당히 높으며, 이수의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 비문은 노수신(盧守愼)[1515~1590]이 지었으며, 글씨는 송인(宋寅)[1516~1584]이 썼다. 묘비는 두전을 두르지 않았고, 비석 중앙에 해서로 ‘중훈대부 장악원정 일재선생 이공지묘’라고 썼으며, 바로 왼쪽으로 문장이 이어지면서 한 바퀴를 둘렀다. 석질은 마모가 많이 되었으나, 글자는 대체로 판독이 가능하다. 비석은 화강암으로 된 좌대 위에 백대리석으로 된 비신을 올리고 위에 이수를 얹었다. 비신은 높이 167㎝, 폭 67㎝, 두께 20㎝이다.
[금석문]
일재 이항 묘비 비문에서는 이항의 업적과 이항의 학문적인 위상, 그리고 당대의 평가를 상세하게 적고 있다.
[현황]
일재 이항 묘비 주변에는 보산재(寶山齋)라는 재실이 있다. ‘보산재’ 현판 글씨는 목인(牧仁) 임종필(林鍾弼)이 썼다. 재실에는 의성 김씨 김석천(金石川)이 9세에 쓴 ‘백세일실(百世一室)’ 현판이 있다. 보산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재실 앞에는 이항의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안동 김씨 김영한(金寧漢)이 찬하고, 두전은 완산 최씨 최병심(崔秉心)이 쓰고, 글씨는 송기면(宋基冕)이 썼다. 이항의 묘소는 쌍분이며, 봉분 앞에 상석 등 석물이 있다. 석물은 오래되어 훼손된 상태이다. 묘소의 우측에는 ‘증정부인 영월 신씨지묘 부좌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성균좨주 행사헌부장령 문경공 일재선생지묘(贈貞夫人 寧越 辛氏之墓 祔左 贈資憲大夫 吏曹判書 兼 成均祭酒 行司憲府掌令 文敬公 一齋先生之墓)’라고 쓴 비석이 있다. 아래쪽 오래된 비석은 마모가 심하여 글씨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일재 이항 묘비는 호남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이항의 행적과 학문 및 평가를 알 수 있고, 조선 시대 명필가 송인이 비문의 글을 쓴 것으로 금석문 연구에서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