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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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一齋 李恒 先生 遺墟痺 |
영어공식명칭 | Iljae Ihang Seonsaeng Yuheob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399-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99년 - 이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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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76년 - 이항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749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6년 7월 26일![]() |
현 소재지 |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3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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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이항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53㎝[너비]|120㎝[높이]|16㎝[두께] |
소유자 | 성주 이씨 문중 |
관리자 | 성주 이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10호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에 있는 이항의 집터에 세운 조선 후기 비석.
[개설]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一齋 李恒 遺墟痺)는 일재(一齋) 이항(李恒)[1499~1576]의 집터였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에 1749년 세운 비석이다. 이항은 1538년 한양에서 어머니 완산 최씨를 모시고 내려와 태서리에서 38년간 거주하였다. 일재 이항의 자취를 알리기 위하여 성주 이씨 문중에서 1749년(영조 25) 금구현령인 유숙기(兪肅基)[1696~1752]에게 청하여 비문과 뒷면의 유허비후지(遺墟碑後識)를 쓰게 하고 비석을 세웠다. 유숙기는 1738년(영조 14) 9월 1일 금구현령에 임명되었으며, 1743년(영조 19) 8월 9일 형조정랑에 임명되었다. 『일재집(一齋集)』에 실려 있는 유허비후지에 1749년 3월 유숙기가 썼다고 되어 있다. 『일재집』「일재선생집속록」에 있는 ‘일재선생유허비후지(一齋先生遺墟碑後誌(兪肅基)’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一齋先生以間世非常之姿 有一變至道之勇 平生用功 最在曾傳一書 精思實踐 眞積力久 克造高明之域 論理氣之妙合 而默契晦翁之旨 明道心之非體 而細卞整庵之謬 皆出於深體自得之見 而類非爲一時蹈襲語也 晩年德成 與南冥大谷齊名 間嘗承召登筵 所陳精一之義 能使明主動聽 旣退而年彌邵 道益尊 遠近學者多宗師之 此其大略 而詳載盧蘇齋所撰墓碣銘 先生姓李氏 諱恒 字恒之 生於弘治己未 卒於萬曆丙子 享年七十八 先生生長漢都 中歲落南 卜築於泰仁西村之粉洞里 今獨其遺墟在焉 而子孫不能有 旋復理於官而得之 遂伐石而表之曰一齋李先生遺墟之碑 請肅基識其後 辭不敢固 敬書如右 噫 惟先賢考槃之所 後之人尙無以耕犁加焉 崇禎紀元百二十二年再己巳三月上澣 後學杞溪兪肅基 識.”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는 2016년 7월 26일 정읍시 향토문화유산 제10호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는 이항이 살았던 집터에 이항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위치]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태서리 399-1번지에 있다.
[형태]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는 붉은 벽돌의 담장을 두른 정면 1칸, 측면 1칸, 홑처마 팔작지붕의 보호각 내에 있다. 보호각은 시멘트로 바닥을 정리한 공터에 있으며, 활주가 있다. 비석은 화강암 기단 위에 비신을 올리고,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얹었다. 비석은 너비 53㎝, 높이 120㎝, 두께 16㎝이다. 앞에는 이항이 칠보산에서 가져왔다는 큰 돌이 세워져 있다. 돌은 너비 94㎝, 높이 153㎝, 두께 32㎝이다.
[금석문]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는 전면에 ‘일재 이선생 유허지비(一齋 李先生 遺墟之碑)’라 새겨져 있다.
[현황]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 앞에는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다. 이항은 칠보산 근처에 보림정사(寶林精舍)를 짓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공부를 하다 밤늦게 돌아올 때 냇가를 건너 마중나온 아내의 옷이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칠보산에서 돌을 옆구리에 끼고 가져와 냇가의 징검다리로 썼다고 한다. 또는 칠보산 용추봉의 바위를 뽑아 냇가로 던진 것이라고도 한다. 원래 위치는 마을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냇가에 있었으나, 1960년경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 앞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일재 이항 선생 유허비는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이항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