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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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石洑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65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광환 |
건립 시기/일시 | 189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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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98년 9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4월 2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만석보지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만석보지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 |
소재지 | 만석보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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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제방 터 |
소유자 | 정읍시 |
관리자 | 정읍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된 만석보 터.
[개설]
만석보지(萬石洑址)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에 있는 만석보가 있던 장소이다. 고부 지역 농민들은 정읍천과 태인천 상류에 보를 막아 농사를 지었는데, 가뭄에도 풍년이 들었다 하여 만석보 또는 예동마을 앞에 있다고 하여 예동보(禮洞洑)라 불렀다. 1893년 고부군수 조병갑은 수탈의 목적으로 두 하천이 합류하는 하류 지점에 새로 만석보를 축조하였다. 조병갑은 축조 과정에서 농민들을 강제 동원하였으며, 주인이 있는 산에서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나무를 베어 사용하였다. 게다가 보를 쌓은 첫해에는 수세를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일두락(一斗落)에 상답(上畓)은 두 말, 하답은 한 말씩을 받아 총 700여 석을 횡령 착복하였다. 또 군민에게 황무지를 개간시키고 강제로 세미(稅米)를 징수하여 사복을 채웠다.
1893년 가뭄으로 인하여 극심한 흉년이 들자 40여 명의 농민들은 고부 관아로 몰려가 만석보 수세(水稅) 감면을 요청하였지만 묵살당하고 쫓겨났다. 1893년 12월 60여 명의 농민들이 다시 고부 관아로 몰려가 만석보 수세 감면을 요청하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합법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자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사발통문 거사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거사 계획은 곧바로 실행되지 못하고 보류되었다. 고부군 농민들의 첫 번째 공격 목표였던 군수 조병갑이 1893년 11월 30일자로 익산군수로 발령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893년 11월 30일 고부군수로 새로 임명된 이근용(李根鎔)이 부임을 미루다가 12월 24일 다시 황해도 안악군수로 전임 발령되었다. 그리고 12월 24일 신좌묵(申佐默)이 고부군수로 임명되었으나 다음 날인 12월 25일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고, 12월 26일 이규백(李圭白)이 고부군수로 임명되었으나 역시 병을 핑계로 12월 26일 사직하였다. 이날 이후 하긍일(河肯一)·박희성(朴喜聖)·강인철(姜寅喆) 등이 차례로 고부군수에 임명되었지만 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이처럼 12월 한 달 사이에 고부군수로 5명이 임명되었으나 모두 핑계를 대고 부임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전라관찰사 김문현이 조병갑을 고부군수로 다시 천거하자 조병갑은 1894년 1월 9일자로 고부군수로 임명되었다. 1894년 1월 10일 마침내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한 농민들이 고부 관아를 습격하였고 다음 날에 만석보를 파괴하였다.
만석보지는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변천]
만석보는 1893년 고부군수 조병갑에 의하여 축조되었으나, 1894년 1월 10일 조병갑의 학정에 분노한 농민들이 고부 관아를 습격하였고, 1월 11일 수탈의 상징이자 원성의 대상이었던 만석보를 파괴하였다. 1898년 9월 고부군수 안길수 재임 당시 만석보를 완전히 철거하였다.
[위치]
만석보지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658 일대에 해당한다. 지방도 제710호를 따라 신태인 쪽으로 가면 왼쪽 둑길 위에 만석보유지비가 서 있다.
[현황]
만석보지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사업회[현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가 1973년 건립한 만석보유지비와 1987년 세운 만석보유지정화기념비가 있다. 맞은편에는 1999년 세운 양성우의 만석보 시비(萬石洑 詩碑)가 있다. 2019년 만석대교와 신태인대교 사이에는 흙을 쌓아 만든 만석보 쉼터가 조성되어 있어 산책로를 따라 언덕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만석보 쉼터에서는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와 만석보가 있던 동진강 상류 물줄기, 두승산과 천태산의 산줄기, 그리고 주변에 드넓게 펼쳐진 배들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현재는 둑을 쌓았던 흔적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