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548
한자 烈女 彦陽 金氏 旌閭
이칭/별칭 김흔 처 언양김씨 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343-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08년연표보기 - 언양 김씨 열녀 명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873년 - 열녀 언양 김씨 정려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5년 - 열녀 언양 김씨 정려 중수
현 소재지 열녀 언양 김씨 정려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343-1 지도보기
성격 정려각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의성 김씨 문중
관리자 의성 김씨 문중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있는 김흔의 아내 언양 김씨의 열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 정려.

[개설]

김흔(金昕)[1558~1629]의 아내 언양 김씨[1570~1597]의 아버지는 김작(金碏)이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였을 때 김흔은 언양현감으로 출전하였고, 거주하고 있던 고부에 일본군이 밀려오자, 언양 김씨는 어린 두 아들과 노복을 거느리고 반등산(半登山)으로 피난하였다. 9월 15일 산에서 일본군을 만나 품고 다니던 은장도로 자결하니, 나이는 28세였다. 시신을 거두어 보니 품안에 남편의 교지(敎旨)가 피에 젖어 있었다. 1608년(선조 41) 열녀로 숙부인에 추증하고 명정을 내렸다. 아들은 김지영(金地英), 김지흥(金地興), 김지완(金地完), 김지후(金地厚)이다. 열녀 언양 김씨 정려(烈女 彦陽 金氏 旌閭)는 ‘김흔 처 언양 김씨 정려’라고도 한다.

[위치]

열녀 언양 김씨 정려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343-1번지에 있다.

[변천]

언양 김씨에게는 1608년 명정이 내려졌으며 1873년(고종 10)과 1965년 중수되었다.

[형태]

열녀 언양 김씨 정려는 자연석과 흙을 섞어서 쌓고 기와를 얹은 담장을 둘렀다. 정면에 1간의 출입문이 있고 안에 정려각이 있다. 정려각은 평지에서 1단을 올리고 조성하였다. 화강암으로 기초를 세우고, 기둥을 올렸다.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활주를 세웠고,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정려각에는 현판과 「열부김씨정려중수기(烈婦金氏旌閭重修記)」, 「정려중수기(旌閭重修記)」[1969년(기유), 11세손 김구락(金龜洛)], 「정문찬시(旌門讚詩)」[진사 남궁두(南宮斗)], 「열녀김씨정려이건기(烈女金氏旌閭移建記)」[1882, 전우(田愚)]의 현판 등이 있다. 현판에는 ‘열녀 행통훈대부 현감선무원종공신 김흔 처 숙부인 언양 김씨지려 선묘무신명정려 금상계유중수 을사중수(烈女 行通訓大夫 縣監宣武原從功臣 金昕 妻 淑夫人 彦陽 金氏之閭 宣廟戊申命旌閭 今上癸酉重修 乙巳重修)’라고 쓰여 있다.

[현황]

2023년 현재 열녀 언양 김씨 정려는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열녀 언양 김씨 정려언양 김씨의 열행을 살필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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