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32
한자 金昕
영어공식명칭 Gim Heun
이칭/별칭 숙승(叔昇),학산(鶴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8년연표보기 - 김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6년 - 김흔 언양현감 부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04년 4월 - 김흔 선무원종공신 녹훈
몰년 시기/일시 1629년연표보기 - 김흔 사망
출생지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활동지 언양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언양현감|승지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의 문신.

[가계]

김흔(金昕)[1558~1629]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숙승(叔昇), 호는 학산(鶴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부현(金溥賢)이고, 할아버지는 김호(金灝)이다. 아버지는 전라도사를 지낸 의병장 김제민(金齋閔)이고, 어머니는 김윤구의 딸 김해 김씨(金海 金氏)이다. 형은 김서(金曙)·김엽(金曄)이고, 동생은 김안(金晏)이다.

[활동 사항]

김흔은 1558년(명종 13) 정읍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제민을 따라 의병으로 나서서 웅치에서 왜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으며, 군량을 모아 의주 행재소에 전달하고 평양으로 떠나는 선조를 호종하였다. 이후 군기시정에 제수되었고, 권율(權慄)의 휘하로 들어가 행주산성에서 전공을 세운 뒤 1596년 언양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 왜군이 울산과 동래를 공격하자 주변 고을인 양산(梁山)과 기장(機長) 수령은 모두 피신하였지만, 김흔은 피신하지 않고 끝까지 언양을 지키며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의 군대와 힘을 합쳐 왜군을 격퇴하였다.

김흔은 1604년 4월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이후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으며, 1629년(인조 7)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흔은 사망한 뒤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도계1길 34-13[도계리 464]에 있는 도계서원(道溪書院)과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1길 70-7[모현리 302-1]에 있는 오산창의사(鰲山倡義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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