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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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不憂軒 丁克仁 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산3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01년 - 정극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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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81년 - 정극인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481년![]() |
개축 시기/일시 | 1784년 - 불우헌 정극인 묘 비석 건립[1784] |
개축 시기/일시 | 1960년 - 불우헌 정극인 묘 비석 건립[1960] |
개축 시기/일시 | 2022년 - 불우헌 정극인 묘 사초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3년 2월 24일![]() |
개축 시기/일시 | 2023년 - 불우헌 정극인 묘 묘역 정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1월 18일 - 불우헌 정극인 묘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변경 |
현 소재지 | 불우헌 정극인 묘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산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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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묘소 |
양식 | 봉토분 |
관련 인물 | 정극인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높이 200㎝, 지름 590㎝, 둘레 1,852.6㎝[봉분]|715㎡[문화재 구역]|4,596㎡[보호 구역] |
소유자 | 영광 정씨 예조판서 불우헌 정극인공파 종중 |
관리자 | 영광 정씨 예조판서 불우헌 정극인공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극인의 묘소.
[개설]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1401~1481]은 우리나라 최초로 민간 주도의 태인 고현동 향약을 제정하여 풍속 교화에 힘썼다. 또한 가사 작품 「상춘곡」과 「불우헌가」, 경기체가의 「불우헌곡」 등을 지어 태산 선비 문화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문학사에 큰 공헌을 하였다. 불우헌 정극인 묘는 2023년 2월 24일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위치]
불우헌 정극인 묘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산34번지에 있다. 무성서원에서 은석천의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무성리삼층석탑이 나온다. 무성리삼층석탑을 지나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광산 김씨 재각으로 가는 길과 불우헌 정극인 묘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왼쪽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영모재(永慕齋)가 나오고, 위쪽에 묘소가 있다. 위쪽에는 정부인 구고 임씨(九皐 林氏)의 묘소가 있다. 구고 임씨는 임실 임씨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임은(林殷)이다. 구고 임씨의 묘소 아래에 불우헌 정극인의 묘소가 있다.
[변천]
불우헌 정극인 묘는 1724년 묘소의 상석 뒤쪽에 있는 비석을 다시 세웠다. 1960년 묘소의 양쪽에 비석을 세웠다. 2022년 묘소를 사초하고, 2023년 묘역을 정비하였다.
[형태]
불우헌 정극인 묘는 화강암으로 호석을 둘렀으며, 앞에는 비석과 상석, 문관석, 장명등, 망부석 등이 있다. 상석 뒤에 있는 비석은 1단의 기단 위에 비신과 연꽃 모양의 뚜껑돌이 합쳐진 형태이다. 봉분의 우측에는 1단의 기단 위에 비신을 올리고,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올린 비석이 있다. 좌측에는 무궁화가 새겨진 사각형의 기단 위에 비신을 올리고 쌍용을 새긴 뚜껑돌을 올렸다. 상석 앞에는 장명등이 있다. 봉분은 높이 200㎝, 지름 590㎝, 둘레 1,852.6㎝이다. 중앙에 있는 비석의 비신은 너비 41㎝, 높이 97㎝, 두께 11㎝이며, 우측의 비석은 너비 45㎝, 높이 131㎝, 두께 20㎝이며, 좌측에 있는 비석은 너비 58㎝, 높이 162㎝, 두께 27㎝이다.
[금석문]
불우헌 정극인 묘 상석 뒤에 있는 비석의 전면에 ‘증자헌대부 예조판서 행조산대부 사간원정언 정공지묘 휘극인 호불우헌 신도비립오방(贈資憲大夫 禮曹判書 行朝散大夫 司諫院正言 丁公之墓 諱克仁 號不憂軒 神道碑立午方)’이라 새겨져 있으며, 측면에는 ‘숭정후재갑진사월일개립(崇禎後再甲辰四月日改立)’이라 쓰여 있어 1784년 새로 새운 비석임을 알 수 있다. 우측에 있는 비석의 정면에는 ‘증자헌대부 예조판서 행사간원정언치사 불우헌정공지묘(贈資憲大夫 禮曹判書 行司諫院正言致仕 不憂軒丁公之墓)’라고 쓰여 있고, 좌측면부터 ‘불우헌정공묘표(不憂軒丁公墓表)’가 기록되어 있어 1960년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좌측에 있는 비석의 정면에는 ‘증자헌대부 예조판서 불우헌정공지묘(贈資憲大夫 禮曹判書 不憂軒丁公之墓)’라 쓰여 있고 좌측면부터 묘표가 기록되어 있는데, 비석은 1960년 세운 것이다.
[현황]
불우헌 정극인 묘 아래에 영모재가 있다. 영모재는 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3칸의 솟을대문을 만들었다. 3칸 중 중앙칸은 출입문이고, 우측은 방, 왼쪽은 창고로 이용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재실이 있다.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3칸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앞쪽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중앙 2칸은 대청, 좌우 2칸은 방으로 되어 있다. 좌측 2칸 위에 ‘영모재(永慕齋)’라고 쓴 현판이 있다. 글씨는 17세손인 정병희(丁炳禧)가 쓴 것이다. 재실 내에는 1873년 기정진(奇正鎭)[1798~1879]이 쓴 「은석산재실기(銀石山齋室記)」, 1976년 만든 「불우헌정선생묘재중수기(不憂軒丁先生墓齋重修記)」, 1960년 도강 김씨 김용기(金龍基)가 쓴 「영모재중수기(永慕齋重修記)」가 있다. 영모재 옆에는 관리사가 있다. 정극인의 후손이 기거하며 묘소와 재각을 관리하고 있다. 정극인 신도비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267번지 향토사료관 옆에 있다. 신도비는 김영한이 글을 짓고, 민병승이 글씨를 썼다. 높이는 161㎝, 폭 68㎝, 두께 32㎝이다.
[의의와 평가]
불우헌 정극인 묘는 태산 선비 문화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한국 문학사에 큰 공헌을 한 정극인의 업적을 살필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