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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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訥堤 閘門 |
이칭/별칭 | 게보 갑문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관청리 979-4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안선호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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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0년 - 눌제 갑문 제1갑문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1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8년 - 눌제 갑문 제1갑문 개건 |
현 소재지 | 눌제 갑문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관청리 97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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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수리 시설 |
관련 인물 | 박규동 |
크기(높이,길이,둘레) | 길이 47.8m, 폭 4m[제1갑문]|길이 14.7m, 폭 4.5m[제2갑문]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한국농어촌공사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관청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수리 시설.
[개설]
눌제 갑문(訥堤 閘門)은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근대 수리 시설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과 부안군 일대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고, 동진강을 따라 들어오는 바닷물의 역류를 차단하기 위하여 세웠다. 조선 후기에는 보가 설치되었고 주변에 게가 많아서 ‘게보[蟹洑]’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게보 갑문이라고도 한다.
[건립 경위]
눌제는 삼국 시대부터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김제 벽골제·익산 황등제와 함께 호남 지역 3대 제방 중 하나였다. 1419년(세종 1) 대규모 수축 공사가 진행되었으나 1420년 홍수로 인하여 농경지가 침수되는 등 피해를 자주 입었다. 이로 인하여 1530년(중종 25) 눌제를 폐쇄하기도 하였다. 이후 눌제로 지나는 고부천 본류에 보를 막았는데 큰비가 내리면 오히려 보 위쪽에 있는 논들이 피해를 입었고, 주민들의 상소를 받아들여 고부군수 박규동이 1873년(고종 10) 철거하였다. 이에 고부군 서부면 백성들이 ‘게보혁파 영세불망비’를 세워 박규동의 공적에 화답하였다.
1919년 쌀의 생산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콘크리트 구조물로 눌제 갑문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1930년 농경지 침수 피해를 입어 갑문을 보수하였다. 1941년 제1갑문 옆에 ‘게보제이갑문[蟹洑第二閘門]’이라는 글씨를 새긴 제2갑문을 설치하였다. 1988년 농지개량조합[현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제1갑문을 철거하고 다시 건설하여 12련 규모로 확장하였다.
[위치]
눌제 갑문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관청리 979-43에 있다. 눌제 제방과 고부천이 만나는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눌제 제방은 고부면 관청리부터 신흥리까지 약 1.5㎞에 이르며, 현재 정읍시 고부면과 부안군 줄포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제747호로 이용되고 있다. 눌제 제방 북쪽으로는 2009년 개통한 지방도 제710호가 지나간다. 눌제 갑문 옆에는 눌제 조망을 위한 눌제정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형태]
눌제 갑문은 배수갑문으로 제1갑문과 제2갑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갑문은 길이가 47.8m, 폭은 4m 이며 9개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제2갑문은 길이가 14.7m, 폭은 4.5m이며 3개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제1갑문과 제2갑문 사이에는 5m 정도 중간 지대가 있다.
[현황]
눌제 갑문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하천 폭을 120m로 확장하는 공사가 완료되면서 해수 역류를 방지하는 기능도 사라지게 되었다. 2018년 정읍시와 부안군 5개면 지역 주민들이 큰비가 내리면 눌제 갑문에서 물의 흐름이 막혀 인접 지역의 농경지 침수 피해가 일어난다는 이유로 눌제 갑문을 철거하여 달라는 민원을 제기하여 철제 수문을 철거하였다.
[의의와 평가]
눌제 갑문은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근대적인 수리 시설로 당시의 토목 기술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눌제의 기능을 계승하였다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