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579
한자 義禁府道事金道彦遺物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370-12[부전동 100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2년 6월 20일연표보기 - 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1월 18일 - 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현 소장처 정읍시립박물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370-12[부전동 1009]지도보기
성격 고문서|백패|서화|고신|녹권
재질 종이
크기(높이,길이,너비) 가로 18.3㎝, 세로 38.1㎝[김만형 홍패]|가로 22.1㎝, 세로 38.9㎝[김도언 백패]|가로 28.8㎝, 세로 43.2㎝[김도언 홍패]|가로 25.7㎝, 세로 43.9㎝[공신녹권]|가로 26.0㎝, 세로 44.0㎝[김만형 추증 교지]|가로 27.1㎝, 세로 32.6㎝[영인 조씨 추증 교지]|가로 63.2㎝, 세로 117㎝[태평연도]
문화재 지정 번호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출신인 조선 후기 문신 김도언의 유물.

[개설]

조선 후기 영조 때 종6품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던 김도언(金道彦)[1684~1735]의 유물 8점이다. 김도언은 본관은 도강(道康), 자는 여유(汝由)이며, 호는 운산(雲山) 또는 운계(雲溪)이다. 1684년(숙종 10)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에서 출생하였다. 1711년(숙종 37)에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1719년(숙종 45)에 증광문과에 병과 18위로 급제하였다. 급제 후에 병조좌랑으로 제수되었다가, 1719년에 의금부도사로 임명되었다.

김도언이 의금부도사로 있었을 당시, 1729년(영조 4) 3월 무신란이 발생하자 사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을 따라 전라도 부안현의 죽도 등 서해안 섬들에 숨어 있는 적도들을 정벌하였고, 경상도 합천현에는 경상도 반란의 주동자였던 조성좌를 생포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무신란을 수습한 후 영조는 김도언을 분무일등공신(奮武一等功臣)으로 책록하고 이조좌랑(吏曹佐郎), 음죽현감(陰竹縣監), 광주진(廣州鎭) 겸병마절도위(兼兵馬節度尉)에 제수하였다. 또 친히 ‘강령경복(降靈慶福) 만년무강(萬年無疆)’이라고 쓴 어필(御筆)과 비단 주머니, 팔보호대인 금토수(金吐手) 및 태평연정도(太平宴庭圖)를 하사하였고, 양무원(梁武原) 종훈(從勳)에 표한 뒤 공신녹권을 내렸다.

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義禁府道事金道彦遺物)을 봉안한 곳은 원래 ‘어필각’이라고 하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성황산 중턱에 있었다. 1940년대 어필각이 철거되자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의 후손 집으로 옮겼다가 2016년에 정읍시립박물관에 기탁되었다. 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은 하사품인 태평연정도 및 어필, 공신녹권, 김도언이 생원시에 입격할 때 받은 백패와 문과에 급제한 후 받은 홍패, 부모의 추증 교지 4건, 어사화 등이 전하여지고 있다. 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은 1992년 2월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1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형태]

김도언 부 김만형(金萬衡)의 홍패는 연도 1690년(숙종 16), 크기 가로 18.3㎝, 세로 38.1㎝이다. 김도언(金道彦) 생원(生員) 백패는 연도 1685년(숙종 11), 크기 가로 22.1㎝, 세로 38.9㎝이다. 김도언의 홍패는 연도 1719년(숙종 45), 크기 가로 28.8㎝, 세로 43.2㎝이다. 공신녹권은 연도 1728년(영조 4), 크기 가로 25.7㎝, 세로 43.9㎝이다. 김만형 추증 교지는 연도 1729년(영조 5), 크기 가로 26.0㎝, 세로 44.0㎝이다. 영인 조씨 추증 교지는 연도 1729년(영조 5), 크기 가로 27.1㎝, 세로 32.6㎝이다. 태평연도(太平宴圖)는 연도 1729년, 크기 가로 63.2㎝, 세로 117㎝이다. 어사화는 연도 미상이다.

[특징]

의금부도사김도언유물김도언이 과거를 통하여 관직에 진출할 때 생산된 문서와 급제 이후 의금부도사를 지내면서 무신란을 진압한 공으로 공신으로 책록되면서 받은 하사품이다. 전자는 김도언이 1685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받은 백패(白牌)와 1719년 문과시에 급제하여 받은 홍패(紅牌)가 있다. 김도언은 생원시에서 3등 제63인의 성적으로 입격하였으며, 문과에서는 병과(丙科) 제18인으로 급제하였다. 김도언이 분무원종공신 일등에 녹훈될 때, 김도언의 부모에게 증직이 내려졌다. 김도언의 아버지인 조산대부 행예조좌랑(朝散大夫 行禮曺佐郞) 김만형에게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 兼 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이라는 벼슬이 내려졌으며, 어머니인 영인 조씨(令人 趙氏)에게는 숙부인(淑夫人)이라는 외명부작(外命婦爵)이 내려졌다. 이 외에 무신란을 평정한 후 인정전(仁政殿)에서 경축하는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그린 태평연도와 어사화 등이 전하고 있어서 무신란의 사후 처리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김도언 유물을 통하여 정읍시 출신의 김만형과 김도언의 관직 진출과 관직 생활, 무신란의 사후 처리 과정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녹권을 통하여 분무공신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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