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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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하학리 56-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광환 |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소장된 동학농민군 한달문이 어머니에게 보낸 한글 편지.
[개설]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는 한달문(韓達文)[1859~1895]이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쓴 옥중 한글 편지 원본이다. 한달문은 1859년 6월 2일 전라도 화순군 도장면 동두산[현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원천리 동산] 출신으로 1886년 27세에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의 무관 벼슬을 하였다. 그러나 외세의 침탈에도 조정의 무능과 부패가 심하여지자 동학 접주가 되어 동학농민혁명의 반봉건·반외세 투쟁에 앞장섰다. 동학농민군은 전라도 남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다 1894년 12월경, 전라도 나주 모시골 점등 전투에서 민보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당시 한달문을 포함한 27명이 체포되었다. 그 중 강도수(姜道守)와 정사심(鄭士心), 이화삼(李化三) 등 13명은 나주 동오면(東五面) 의거소(義擧所)에서 총살되었고, 한달문·주심언(朱心彦) 등 14명은 12월 20일 나주 감옥에 수감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한달문은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하여 어머니 쌍동댁에게 구명을 요청하였고 집안에서 급히 돈을 마련하여 구하였으나, 집에 온 지 이틀 후인 1895년 4월 1일 장독(杖毒) 후유증으로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는 한달문의 손자인 한우회가 소장 중이던 족보 속에서 발견하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증하였다. 2022년 2월 10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제작 발급 경위]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는 1894년 12월, 전라도 나주 동창 유기모[현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서 민보군에게 붙잡힌 한달문이 고향에 있는 어머니 쌍동댁(雙童宅)에게 쓴 옥중 한글 편지 원본이다. 편지는 1894년 12월 28일 작성되었다.
[형태]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는 한지에 붓으로 쓴 1장짜리 편지이다. 크기는 가로 21.2㎝, 세로 40㎝이다.
[구성/내용]
어머님께 올리나이다.
제번하고 모자 이별 후로 소식이 서로 막혀 막막하였습니다. 남북으로 가셨으니 죽은 줄만 알고 소식이 없어 답답하였습니다. 처음에 나주 동창 유기모 시굴점 등에서 죽을 고생하다가 한 사람을 만나서 소자의 토시로 신표를 하여 보내어 어머님 함께 오시길 기다렸더니, 12월 20일 소식도 모르고 오늘 나주 옥으로 오니 소식이 끊어지고 노자 한 푼 없어 우선 굶어 죽게 되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요. 돈 300여 냥이 오면 어진 사람 만나 살 묘책이 있어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님 불효한 자식을 급히 살려 주시오. 그간 집안 유고를 몰라 기록하니 어머님 몸에 혹 유고 계시거든 옆 사람이라도 와야 하겠습니다. 부디부디 명심불망하업고 즉시 오시기를 차망복망하옵니다. 남은 말씀 무사하나 서로 만나 말하옵기로 그만 그치나이다.
1894년 12월 28일 달문 상서
의복 상하벌, 보신 한 벌, 토시 한 벌, 주의 한 벌, 망건, 노자 2냥
온 사람과 함께 가 과세를 편히 할 터이니 혹 가고 싶어도 올 수 없으면 옥동 가고골 한기에서 의복 지어 보내소서.
[의의와 평가]
동학농민군이었던 한달문이 전라도 방언으로 직접 쓴 1장의 한글 편지는 고된 옥중 생활과 살고자 하는 한 젊은이의 절박한 심정을 담은 귀중한 사료로 보존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은 “본 편지는 본인의 구명을 요청하는 등의 내용으로 동학농민군의 처지 및 실상을 보여 주고 있으며, 동학농민군이 작성한 문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희소하므로 등록 가치가 충분하다”라는 사유를 들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2023년 5월 24일, 동학농민혁명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기 위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정받았으며,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를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 185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