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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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元均 |
영어공식명칭 | Jeon Wongyun |
이칭/별칭 | 진정(眞精)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류호석 |
출생 시기/일시 | 114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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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161년 - 전원균 성균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174년 - 전원균 내시로 발탁 |
활동 시기/일시 | 1180년 - 전원균 권지각문지후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207년 - 전원균 광록대부 판태복사 지어사대사지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211년 - 전원균 상서좌복야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218년![]() |
출생지 | 태인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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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태산 |
대표 관직 | 상서좌복야 |
[정의]
고려 후기 정읍 출신의 문신.
[가계]
전원균(田元均)[1144~1218]의 본관은 태산(泰山)이며, 자는 진정(眞精)이다. 아버지는 신호위대장군 전총문(田寵文)이고, 어머니는 태산 허씨(泰山 許氏)이다. 부인은 계씨(桂氏)이고, 아들 전보룡(田甫龍)·전득량(田得良)·전보귀(田甫龜)·전보린(田甫麟)이다. 딸은 네 명인데 모두 벼슬아치의 아들과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전원균은 1144년(인종 22) 태인[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에서 태어났다. 1162년(의종 16) 성균시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문음(門蔭)을 통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170년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측근 문신인 내시(內侍)로 발탁되었고, 시키는 일을 모두 임금의 뜻에 맞게 하여 총애를 받았다. 1180년(명종 10) 권지각문지후에 제수되었고, 1182년 전중내급사가 되었다. 합주(陜州)[현 경상남도 합천군]의 수령으로 재임할 때에는 청백리로 칭송을 받았으며, 시각문지후를 거쳐 감찰어사·좌사원외랑·이부원외랑을 역임하였다. 이부에 있을 때에는 인사를 공정히 하여 권력자의 청탁을 들어 주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전원균은 시어사와 형부의 좌사낭중을 역임하였고, 호부시랑을 거쳐 서경유수로 부임하였다. 1182년 낭장 김광유(金光裕)와 함께 금나라에 가서 방물을 바치고 만춘절(萬春節)을 하례하였으며, 1207년(희종 3)에는 탄핵을 받고 추밀원에서 나아가 광록대부 판태복사 지어사대사지대가 되었는데, 세력이 승선(承宣)과 비등하므로 사람들은 이를 영화롭게 여겼다. 1211년에는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상서좌복야에 제수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사임하고 물러난 뒤 1218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