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05
한자 安義
영어공식명칭 An Ui
이칭/별칭 의숙(宜叔),물재(勿齋),안충렬(安忠烈)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29년연표보기 - 안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6월 - 안의 태조 어진과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겨 보존
활동 시기/일시 1593년 - 안의 활인서별제 제수
몰년 시기/일시 1596년연표보기 - 안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76년 - 안의 남천사 배향
출생지 태인 백천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남천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남전길 34-13[시산리 844]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탐진
대표 관직 활인서별제

[정의]

조선 후기 정읍 출신의 문신.

[가계]

안의(安義)[1529~1596]의 본관은 탐진(眈津)이며, 자는 의숙(宜叔), 호는 물재(勿齋)이다. 어릴 적 이름은 안충렬(安忠烈)이다. 병조판서를 지낸 안사종(安士宗)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예조판서를 지낸 안기현(安起玄)이다.

[활동 사항]

안의(安義)는 1529년(중종 24) 태인(泰仁) 백천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에서 태어나 이항(李恒)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20여 일 만에 한성부가 함락되고 전주사고를 제외한 춘추관·충주사고·성주사고의 실록이 불타자,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은 전주 경기전의 태조(太祖) 어진(御眞)[임금의 화상(畫像)이나 사진]과 전주사고의 실록을 정읍 내장산으로 옮겨 수호하기로 결정하고 어진과 실록을 지킬 사람을 뽑았다. 안의는 손홍락과 함께 자원하였고, 경기전참봉 오희길(吳希吉)·손홍락과 더불어 어진과 실록을 우마 30여 마리에 싣고 1592년 6월 22일 정읍 내장산 용굴암(龍窟庵)에 옮긴 뒤 1년간 지켜 냈다. 1593년에는 왕명에 따라 실록과 어진을 아산(牙山)으로 이송하여 7월 24일 충청도관찰사 이산보(李山甫)에게 인계하였고, 손홍락과 함께 선조에게 ‘중흥 6책(中興 六策)’이라는 시무책을 올리기도 하였다.

안의는 손홍락과 함께 곡식과 의복 등을 모집한 뒤 스스로 의곡계운장(義穀繼運將)을 맡아 의주의 행재소(行在所)까지 수송하였으며, 일부는 세 곳의 의진(義鎭)으로 나누어 보내기도 하였다. 1593년 충청도관찰사 이산보의 건의로 활인서별제에 제수되었다.

[학문과 저술]

안의손홍록과 함께 내장산으로 실록을 옮겨 수직(守直)하였던 사정을 『임계기사(壬癸記事)』를 써서 기록으로 남겼다.

[상훈과 추모]

안의는 1676년(숙종 2)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 남전길 34-13[시산리 844]에 있는 남천사(藍川祠)손홍록과 함께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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