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09
한자 宋玹壽
영어공식명칭 Song Hyunsoo
이칭/별칭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정민(貞愍)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45년 - 송현수 전구부승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54년 - 송현수 여량부원군 책봉
활동 시기/일시 1454년 12월 - 송현수 판돈령부사 제수
몰년 시기/일시 1457년연표보기 - 송현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98년 - 송현수 복권
출생지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거주|이주지 한성부 - 서울특별시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여산
대표 관직 풍저창부사|판돈령부사

[정의]

조선 전기 정읍 출신의 문신이자 단종의 장인.

[가계]

송현수(宋玹壽)[?~1457]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송희(宋禧)이고, 할아버지는 송계성(宋繼性),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송복원(宋復元)이다. 부인은 민소생(閔紹生)의 딸 여흥민씨(驪興 閔氏)이고, 아들은 송거(宋琚)이다. 딸이 단종(端宗)의 정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이다.

[활동 사항]

송현수는 1445년(세종 27) 전구부승이 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풍저창부사로 있던 1454년(단종 2) 딸이 단종의 비가 되면서 동지돈령부사에 오르고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책봉되었으며, 지돈령부사를 거쳐 12월에 판돈령부사가 되었다. 1457년(세조 3년) 상왕이던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고 영월에 유배되면서 송현수도 하옥되었다. 이후 송현수는 단종의 복위 운동에 가담하였다는 죄목으로 100대의 곤장을 맞고 가족과 함께 지방의 관노(官奴)가 되었다가 10월 21일 세조의 명으로 처형되었다.

[상훈과 추모]

송현수는 1698년(숙종 24) 복권되었다. 1791년(정조 15)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1090-1]에 있는 장릉(莊陵) 배식단(配食壇)의 배향신(配享臣)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고, 정민(貞愍)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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