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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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坫(岾) |
영어공식명칭 | Gim Jeom |
이칭/별칭 | 경숙(慶叔),매당(梅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망제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만오 |
몰년 시기/일시 | 156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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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1년 - 김점 유허비 건립 |
출생지 | 부안군 옹정 -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 |
거주|이주지 | 고부군 우일면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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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오공동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망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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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남고서원(南皐書院)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1길 392[보림리 880-1]![]()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부안 |
대표 관직|경력 | 영은전참봉 |
[정의]
조선 전기 정읍 지역에 거주한 학자.
[가계]
김점(金坫)[?~1560]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경숙(慶叔), 호는 매당(梅堂)이다. 아버지는 김석옥(金錫沃)이다. 사위는 기대승(奇大升)의 장남 기효증(奇孝曾)이다.
[활동 사항]
김점은 부안군 옹정[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서 태어나 이항(李恒)[1499~157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이현(二賢)으로 불렸다. 명종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영은전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직하고 낙향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이후 거주지를 스승 이항의 거처와 가까운 고부군 우일면(雨日面)[현 정읍시 정우면]으로 옮겼다.
김점은 당대의 대학자들인 김인후(金麟厚)·조헌(趙憲)·김안국(金安國)·기대승 등과 교유하였으며, 만년에는 오공동(五公洞)[현 정읍시 망제동] 앞 곡소(曲沼)의 석벽(石壁) 위에 척심정(滌心亭)을 지은 뒤 아침저녁으로 글을 읽고 때로는 낚시를 즐기면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가 1560년(명종 15)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정은 사망한 뒤 지금의 정읍시 북면 보림1길 392[보림리 880-1]에 있는 남고서원(南皐書院)에 배향되었다. 1901년에는 척심정 터인 지금의 정읍시 방천길 24-3[망제동 산40]에 매당 김선생 척심정 유허비(梅堂 金先生 滌心亭 遺墟碑)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