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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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吉相 |
영어공식명칭 | Yu Gilsa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원기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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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9월 - 유길상 이성렬 의진에서 의병 항쟁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9월 12일 - 유길상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 징역 1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17년![]() |
출생지 |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거주|이주지 | 정읍군 북면 복룡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농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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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활동지 | 태인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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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순창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유길상(柳吉相)[1877~?]은 1877년 정읍에서 태어났다. 정읍군 북면 복룡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농소동]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이성렬(李成烈)의 의진에 가담하였고, 1909년 9월 동료 6명과 함께 무장을 하고 정읍·태인·순창 지역에서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일제의 압력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7월 31일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은 무장 봉기를 시작하였고, 이후 의병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유길상이 이성렬 의진에서 활동한 1909년 9월은 일제가 전라도 지역 의병들을 초토화하기 위하여 남한 대토벌 작전을 실시하던 때여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길상은 힘든 상황임에도 이성렬의 지휘 아래 의병 항쟁을 전개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1909년 9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10년 8월 이후 일제가 회유책으로 실시한 대사면령에 따라 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유길상의 공적을 기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