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300683
한자 徐洛西
영어공식명칭 Seo Nakse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연표보기 - 서낙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7월 20일 - 서낙서 태인에서 의병 활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09년 - 서낙서 정일국 의진에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10년 7월 28일 - 서낙서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 선고
추모 시기/일시 2014년연표보기 - 서낙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칠보면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지도보기
활동지 정읍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성격 의병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서낙서(徐洛西)[1874~?]는 1874년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였다.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 항쟁이 거세게 일어났고, 서낙서항일 의병에 동참하였다.

서낙서는 1908년 7월 20일 동료 의병 4명과 함께 태인군 서촌면 성재동에 있던 허선달(許先達)의 집에 찾아가 화승총 1정을 얻었고, 이후 정일국(鄭日國) 의진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정일국은 남원 출신으로 1906년 최익현(崔益鉉)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우무사(右武士)로서 참가하였다.

서낙서는 1909년 3월 4일 3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고부군 북부면 흔향리[현 정읍시 영원면]에 있는 조공숙(曺公淑)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고부군 북부면 운학동[현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 나도진(羅燾珍)의 집을 찾아가서 군자금 지원 요청을 하였지만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서낙서는 의병 활동을 이어 가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0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강도죄가 적용되어 징역 10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서낙서의 공적을 기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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