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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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得春 |
영어공식명칭 | Yi Deukch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원기 |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이득춘(李得春)[1883~?]은 1883년(고종 20) 정읍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유생·해산 군인·평민들이 참여하는 후기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정읍 지역에서도 김영백(金永伯)·이성화(李成化)·박춘화(朴春化)·신보현(申甫鉉) 등이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고, 이득춘은 1909년 1월 김영백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항쟁에 동참하였다.
이득춘은 이후 정읍과 흥덕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1월 20일 흥덕 출신 신덕오(申德五)를 비롯한 7명의 의병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정읍군 내동리[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상교동]에 있는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을 찾아가 엽전 25냥과 짚신 15족을 제공받았다. 1909년 2월 5일에는 김영백 의진 소속 의병 14명과 함께 무장을 한 채 흥덕군 해평리[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성내면 일대]의 동장 집을 찾아갔다. 동장을 통하여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은 후 본인들은 의병이므로 활동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에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해평리 마을 주민들은 엽전 50냥과 짚신 15족을 협조하였다. 이후 이득춘 등은 흥덕군 종성리와 세곡리[현 고창군 신림면 세곡리]에서도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의병들의 활동이 이어지자 고부경찰서에서는 1909년 8월 14일 정읍·태인·순창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의병들을 조사·체포하기 위하여 변장 수색대를 조직하였다. 이득춘은 8월 15일 정읍 읍내에서 변장 수색대에 체포되었고, 1909년 9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다가 1912년 은사령(恩赦令)으로 형 집행이 중지되어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득춘의 공적을 기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