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300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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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順花 |
영어공식명칭 | Yi Sunhwa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복흥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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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7월 29일 - 이순화 이성화 의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7월 23일 - 이순화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17년![]() |
출생지 | 복흥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복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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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복흥리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복흥리 |
활동지 | 부안 -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정읍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이순화(李順花)[1888~?]는 1888년(고종 25) 정읍군 북면 복룡리(伏龍里)[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복흥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월 일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해산 군인·유생·평민들이 참여하는 후기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났다. 정읍 지역에서도 이성화(李成化)·김영백(金永伯)·박춘화(朴春化)·신보현(申甫鉉) 등이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고, 이순화는 1908년 7월 29일 이성화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 항쟁에 동참하였다.
이성화 의진에 가담한 이후 이순화는 1909년 1월 3일까지 이성화의 명령에 따라 2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부안군 소산면(所山面) 및 기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이성화 의진은 다른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일본의 경찰·헌병 등과 교전을 벌이면서 군세를 확장시켜 나갔다. 1909년 4월에는 고부·순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신보현 의진과 연합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이순화는 의병 활동 중 체포되었고,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폭동죄라는 명목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순화의 공적을 기려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